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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갑질부터 무단사용까지"…디자이너의 고충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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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공공기관 의뢰 시 부당대우 多

연간 총 피해규모 2400억원 집계

디자인진흥원, 법률자문단 운영 중

"불공정 근절…디자이너 권리 보장"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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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에 안 만날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안 될 것 같냐고요!"

디자인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한 공공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일을 겪고 이른바 '갑질'까지 당했다. A씨는 공공기관 직원 B씨에게서 디자인 기획 의뢰를 받았는데,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업무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아니, B씨를 철석같이 믿은 것부터 오산이었다. B씨는 "공공기관은 보고·행정 절차가 까다롭다"며 품의를 올리기 위한 기획안을 요청해왔다. 계약은 계약대로, 작업은 작업대로 신의를 갖고 일하자는 뜻이었다. "공공기관 계약은 100% 체결된다"고 약속했던 B씨는 그 뒤에 말을 바꿨다. A씨는 "2개월간 공들여 작업한 기획안을 전달하자 더 이상 업무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A씨가 기획안을 만들던 도중 B씨는 "계약 체결은 절차가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물을 받아본 후 변심해 일방적으로 계약을 맺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B씨는 적반하장격으로 "다음번에 안 만날 것 같나"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안 될 것 같나"고 큰소리쳤고, "과거에도 이렇게 해왔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A씨는 "이런 부당함을 굴복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며 억울함과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불공정 거래 피해…"디자인 업무 인식 개선을"= 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가 발표한 '디자인기업 공정거래 실태조사'를 보면 2021년 디자인전문업체가 거래상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22.7%로 전년 대비 5%포인트 상승했다.

종사자 규모별로는 10명 이하 소형업체의 피해 경험률이 25% 이상으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피해 규모를 따져보니 그해 평균 9670만원이었으며, 업계 전체 피해 금액은 약 2400억원으로 추산됐다. 피해 유형별로는 '불공정거래' 관련 피해가 22.3%로 가장 높았다. 공공기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갑질을 당한 A씨가 겪은 사례도 불공정거래에 포함된다.

불공정거래 피해 세부 사례 가운데 '무리한 디자인 방향 변경 및 수정(15.7%)' 응답이 2년 연속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다음은 '계약 내용과 상관없는 개발 요구(14.3%)'였다. 주요 분쟁 대상은 '중소기업(78%)'과 '정부·지자체·공공기관(50.7%)'이었다. 피해가 발생해도 감수한다는 기업에 이유를 묻자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재거래 시 불이익을 고려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김태봉 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 사무총장은 "디자인은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 시장 조사부터 사용자 분석, 제품 생산성, 편리성 등까지 따져보는 복합적인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디자인을 단순히 '그림 몇장' 정도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디자인이 제품 경쟁력 확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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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자문 무료 지원…"디자이너 권리 보장"= 한국디자인진흥원은 디자인 피해 예방을 위해 변호사, 변리사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법률자문단을 2012년부터 운영 중이다. 올해 디자인 법률자문단 사업 예산은 2억5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3.6% 증가했다. 전국 5개 디자인 진흥기관과 디자인산업연합회, 한국디자인진흥원 중국사무소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사업을 수행 중이다. 디자인기업은 무료로 경영상 필요한 법률상담과 자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대구에서 디자인전문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클라이언트가 폐업을 하게 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미 해당 기업이 의뢰한 로고와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업무를 마친 후였다. 그런데 폐업했다는 이유로 계약이 파기된 것이라며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더란 것이다. C씨는 2021년 2월부터 용역비를 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해 1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C씨는 "결국 조정으로 합의를 하고, 많은 금액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폐업한 업체인 피고 측에서 "디자인 원본 파일을 달라"고 요구했고, C씨는 '원본 파일을 줘야 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 법률자문단에 문의했다. 자문위원은 "피고 측이 '계약은 파기된 것'이라고 수차례 주장한 것을 감안하면, 계약이 이미 해지된 상황에서 C씨도 계약상 의무를 이행할 이유가 없다"면서 "원본 파일을 제공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된다"고 답했다.

공정한 디자인 유통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디자인표준계약서도 개발된 상태다. 용역 당사자 간 권리·의무 관계를 명확히 하고, 갑을 명칭 대신 수요자·공급자 명칭을 사용해 평등한 조건에서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디자인대가기준 종합정보시스템'에 접속하면 초급·중급·특급 등 디자이너 등급별 노임단가를 확인하고 적절한 임금 단가를 산정할 수 있다. 윤상흠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은 "디자인 분쟁 해결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통해 더욱 건강한 디자인 거래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디자인계 불공정 거래행위를 근절하고 디자이너의 권리가 보장되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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