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거창 사과와 오일장
시장은 봄과 여름이 교차하고 있었다. 늦여름에 수확할 밤고구마순이 있는가하면, 옻순과 같은 나물이 무르익은 봄을 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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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거창을 가는 방법은 고속도로에서 거창 나들목으로 나가는 방법이 있다. 그 외에는 무주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덕유산을 넘는 방법도 있다. 고속도로보다 살짝 늦지만 주로 이 길로 다닌다. 덕유산을 넘는 동안 벚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버찌를 먹은 새들이 날아다니며 싸지른 흔적이다. 무주와 거창의 경계, 빼재터널을 나오면 거창이다. 길을 내려오면 반기는 것은 하얀색 사과꽃, 꽃향기가 진할 거 같지만 코를 갖다대야 겨우 향기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여리다. 50년 된 고목에서 나는 사과가 있는 농원이 터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 사과를 사러간 건 아니다. ‘사이다’를 사러간 자리에 사과 판매 문구를 봤을 뿐이다.
사이다는 우리가 아는, 찐 달걀과 환상의 궁합인 그 음료가 아니다. 사과를 발효해서 만든 술을 말한다. 일본에서 잘못 부르던 것을 우리가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사과 발효주 사이다는 맥주처럼 탄산이 강하다. 세 가지 맛이 있다. 달콤한 ‘스위트’는 알코올 함량이 3%, ‘스탠더드’는 4.5% 그리고 단맛이 적은 6%의 ‘드라이’가 있다. 스탠더드를 숙소에서 차갑게 해서 마셔봤다. 맥주 홉의 쌉싸름함을 뺀 맛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싶다. 포도로 만든 샴페인과는 다른 풍미가 제법 매력적이다. 가볍게 한잔할 때 딱 좋은 술이다. 농원은 술 작업장 외에도 사과나무 주위에 잔디를 깔아 산책하기 좋게 만들었다. 식사와 차도 판매를 한다. 사과를 넣고 만든 피자라든지 카레가 있다. 몇 가지 안 되는 메뉴 중에서 사과를 넣고 만든 새콤달콤한 소스가 좋은 햄버그스테이크를 선택했다. 햄버그스테이크는 다른 곳의 달달한 소스와 달리 새콤한 사과 맛이 좋다. 햄버그스테이크를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괜찮다. 느끼한 맛을 사과의 신맛이 딱 잡아준다. 식사에는 디저트가 포함되어 있다. 커피보다는 사과로 만든 소르베를 선택했다. 깔끔한 맛이 식사 후 딱 맞았다. 거창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풍경 또한 좋다. 또 다른 사과 제품은 거창 나들목을 나오면 바로 우측에 로컬푸드 매장과 사과를 테마로 만든 빵집 겸 카페에서 볼 수 있다. 사과주스나 사과젤리, 빵 등을 판다. 여기서의 선택은 사과파이, 거창 사과로 만든 파이가 있다. 일전에 사과 산지에서 이런 제품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들 모양만 본뜬 식상한 빵만 만드는 현실에 아쉬움을 담아 사과파이를 이야기했었다. 거창은 사과를 제대로 가공해서 팔고 있다. 사과파이에 있는 조린 사과가 약간 흠이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예전에 먹어본 파이가 생각났다. 단단한 사과인 홍옥이나 황옥 품종으로 한 것으로 파이를 만들어도 신맛과 단맛에 식감이 좋았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거창의 사과와 딸기로 만든 팝시클과 로컬 재료를 사용한 젤라토 또한 괜찮다. 다른 것은 맛을 보지 못하고 사과와 딸기가 60% 들어간 팝시클은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맛이다. 거창에 간다면 필히 맛보면 좋다. 관과 민이 합쳐서 다양한 사과 가공품을 내는 곳이 내 경험으로는 거창이 유일한 곳이 아닌가 한다.
사과 구경을 얼추 했으니 장터 구경이다. 전날에 도착해 거창 시장을 둘러봤다. 상설시장에 점포가 여럿 열려 있어도 지나는 이가 드물다. 전형적인 시골 장터 모습이다. 내일 21일(1, 6장)은 오늘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거창은 사실 다음주인 26일로 일정을 잡았다가 날짜를 당겼다. 갑작스레 일본 출장이 잡힌 탓이다.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를 돌면서 토종닭 요리를 둘러보는 출장이다. 4월이 지나면 봄나물도 얼추 들어갈 듯싶기도 해서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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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에 도착하면 반겨주는 새하얀 사과꽃…발효주 ‘사이다’는 사과의 풍미 가득해 가볍게 마시기 좋아
다른 산지들과 다르게 민·관 힘 합쳐 파이·소르베·젤라토·팝시클 등 다양한 사과 가공품 제작
시장서 먹은 비빔짬뽕, 기름지지 않은 깔끔한 맛이 매력…돌미나리와 무친 도토리묵은 향도 맛도 일품
장이 서는 날, 예상대로 시장은 사람 냄새가 차고 넘쳤다. 상가와 길거리에는 사람도 상품도 많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장터에 들어섰다. 맨 처음 눈에 들어선 것은 바로 싱싱한 오가피순. 가격을 물어보니 1만원. 화순부터 청도까지 지역과 상관없이 나물은 대략 1만원에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돌아서서 좀 더 구경할까 하는데 “개시 좀 해주셔, 아재요.” 개시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었다. 대신 들고 다닐 수 없기에 이따 찾기로 하고는 산 것을 맡겼다. 게다가 양이 많지 않아 돌아다니다 보면 누가 사갈 듯싶기도 했다. 시장은 봄과 여름이 교차하고 있었다. 시장 초입에서는 늦여름에 수확할 밤고구마순을 팔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햇마늘과 허여멀건한 햇양파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창은 시장 구성이 다른 곳과 달리 재미난 곳이다. 상설시장의 상가는 여느 시장과 다름없지만 선수와 비선수가 서로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시장 주통로는 장사꾼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용돈 벌러 나온 할머니들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덜 지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할머니들 앞에 놓여 있는 품목들은 대개가 나물과 잡곡류들. 커다란 봇짐은 없고 대개 검은 봉지 몇 개나 상자 하나가 전부다. 돌아다니면서 옻순을 찾았다. 시장을 세 바퀴 정도 돌았을 때 드디어 발견. 이웃한 함양에서 온 옻순이었다. 옻순의 맛은 지면을 통해 봄이 올 때마다 이야기했다. 여리고 긴 여운을 지닌 단맛이 아주 좋다고 말이다. 두릅이나 엄나무, 오가피가 사포닌 때문에 쌉싸름한 맛이 나는 것과는 맛의 결이 다르다.
익숙한 모양을 띤 나물, 입에서는 이름이 약 올리듯 뱅글뱅글 돌기만 할 뿐 뱉어내지 못한다. 이름을 물어보니 ‘지부’, 원래 이름은 비비추다. 된장에 무치면 고소하다고 한다. 이미 산 나물이 네 가지, 오가피순, 철동잎(고추나무순), 옻순에 미나리까지 있어 다음으로 미뤘다. 지난 청도에서 향 좋은 미나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밑동이 진한 보라색을 띠어야 하는 것을 말이다. 돌아다니다 보니 돌미나리 중에서 밑동색이 진한 녀석을 만났다.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아까 시장통에 있던 묵집이 생각났다. 묵밥을 팔면서 도토리묵과 메밀묵도 파는 몇 집이 있었다. 돌미나리와 도토리묵을 사서 무치면 상당히 맛날 듯싶었다. 미나리를 사고는 다시 묵집으로 가서 묵을 샀다. 재료가 좋으면 요리는 반 이상이 성공이다. 양념장을 만들고 잘라서 무치기만 하면 된다. 향기 좋은 미나리에 쌉싸름한 도토리묵의 궁합은 성춘향과 이몽룡 이상을 보여준다. 요리 초보자라도 이런 재료로 한다면 선수 못지않게 만들 수 있을 듯싶다. 제철 식재료의 힘을 믿는 순간 초보 탈출이다.
향기 좋은 미나리에 쌉싸름한 도토리묵의 찰떡궁합, 오가피순과 철동잎 등 네 가지 산나물 쇼핑을 마치고, 깔끔한 맛의 비빔짬뽕으로 시장기를 달랬다(사진 왼쪽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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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오일장은 다른 장터에는 흔히 있는 족발이 없었다. 시장에 족발과 피순대 파는 곳이 여럿이기에 그런 듯싶다. 순댓국 한 그릇 할까 하다가 선택한 메뉴는 비빔짬뽕. 경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볶음짬뽕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양새다. 볶음짬뽕은 약간 기름지지만 비빔짬뽕은 깔끔하다. 건더기 양 늘리는 것에만 쓸모 있는, 삶으면 껍데기가 유독 커보이는 냉동 홍합이나 위고동, 훔볼트오징어가 들어 있지 않다. 오징어와 채소로만 볶는다. 국물은 아주 조금만 들어 있다. 맛을 보면 보통의 짬뽕과 다름없다. 채소와 오징어가 내는 깔끔한 맛이 매력이다. 금호반점 (055)943-1559
거창시장은 식사할 곳이 다른 곳보다 많았다. 순댓국밥을 먹을 수 있는 곳, 묵밥을 먹을 수 있는 골목과 군데군데 수제비와 멸치국수를 파는 식당이 꽤 있었다. 게다가 비빔짬뽕까지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거창의 수송대 구경까지 했다. 수송대를 거친 물길은 합천호를 지나 낙동강 본류와 만난다. 물과 산이 좋은 곳, 게다가 다양한 사과 가공품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이다.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김진영 MD.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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