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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법정B컷]강릉 급발진 첫 재판…'볼보 급발진' 재판 주목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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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노컷뉴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선처 탄원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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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안 돼, 도현아, 도현아"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티볼리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60대 여성의 절규입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파를 타고 전국에 나가면서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죠. 8년 간 손주를 키우던 할머니는 이 사고로 손주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도현 군의 가족은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첫 재판이 지난 2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열렸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재판이 있습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최규연 부장판사)에서 심리 중인 '볼보 급발진 의심' 재판입니다. 오늘 '법정B컷'은 기존 급발진 재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매 변론기일마다 나오고 있는 그 법정의 모습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인간이기에 그날의 완벽한 진실을 알기 어렵고, 또 전문가가 아니기에 고도의 기술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날의 상황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 했던 모습이 펼쳐진 법정으로 가보겠습니다.

"다 감정해보자"던 재판부… 진짜 다 하고 있다

볼보 급발진 재판은 지난해 9월, 법정B컷으로 한 번 전해드린 적이 있죠. 아직 1심 재판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이 재판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양한 감정 절차를 밟으며 사고 당시 상황에 최대한 접근하려 하고 있어서입니다.

운전 경력 23년의 50대 여성 A씨는 지난 2020년 10월, 경기도 판교도서관 인근에서 간단한 업무를 본 뒤 차량에 탑승합니다. 시동은 걸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후 A씨는 잠시 내려 과일을 산 뒤 차량에 다시 오릅니다.

얼마 뒤 차량은 굉음을 내며 내달립니다. 영상을 보면 차는 감속 없이 최대 120km/h의 속도로 500m를 달렸고, 그 와중에도 보행자와 전방 차량을 이리저리 피한 뒤 다시 차선으로 복귀해 정확히 주행합니다. 국기게양대를 들이받고서야 차는 멈춰 섭니다.



전치 20주의 큰 부상을 입은 A씨는 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첫 변론기일부터 재판부는 어려운 사건이라며, 사건 파악을 위해 최대한 모든 감정을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죠.

22.07.06 서울중앙지법, 볼보 상대 2억 원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 기일 中
재판부
"사안과 내용 등이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이어서 증거 조사 신청을 되도록 채택할 것이니 '채택하면 안 된다'는 식의 의견은 내지 마세요. 감정이 필요하거나, 검증이 필요하다는 등의 방향으로 의견을 내는 것이 재판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연간 400건 정도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급발진이 인정돼 제조사의 손해배상이 인정된 사건은 사실상 0%입니다. 현재 2심에서 급발진이 인정돼 사망 운전자의 유족이 승소한 'BMW 사고'만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죠.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이는 운전자가 결함을 입증해야 한다며 '결함 입증 책임'을 운전자에게 돌린 현행법의 영향이 큽니다. 전문가도 아닌 개인이 차량 결함을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기업을 상대로 관련 자료를 받아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자율주행 시대에 차량은 더욱 고도화되고 복잡해지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볼보 급발진 재판부는 최대한 많은 감정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블랙박스 영상 감정 △블랙박스 음향 감정 △EDR(Event Data Recorder) 감정 △작동장치 감정 등이 채택돼 진행 중입니다.

운행 당시의 데이터를 기록한 ASDM(Active Safety Domain Master)에 대한 감정은 볼보 측이 '추출 장비가 스웨덴 본사에 있기 때문에 스웨덴으로 해당 기록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고 측도 '볼보 문제를 볼보가 감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맞서고 있죠.

그럼에도 감정은 하나하나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변론에선 블랙박스에 녹음된 음향에 대한 감정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23.05.17 서울중앙지법, 볼보 상대 2억 원 손해배상 소송 변론 기일 中
A씨 측 "음향 감정의 감정서 31쪽을 보시면 변속 레버를 P(주차)에서 D(주행)로 움직이는 샘플 음향을 지난 월요일에 채취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고 당시 영상과) 비교 분석하는 보완 감정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재판부 "음향감정 말이죠?"

A씨 측 "네"

재판부 "피고 측 의견은요?"

볼보 측 "원고 측에서 내면 반박하겠습니다"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 담긴 음향은 한국법음향연구소의 감정이 진행 중입니다. 블랙박스에 담긴 '사고 당시 엔진음'과 같은 모델의 차량이 '정상적으로 급가속(제로백, 0에서 100km/h 도달)'할 때와의 음향적 차이가 있는지, A씨가 변속 레버를 조작하는 소리가 담겼는지 등 다양한 음향 분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단 감정 업체는 엔진음에 대해선 "상호 간의 유사성이 관찰되지 않고, 그 특성에서 차별성이 관찰된다"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사고 당시 엔진음과 정상적 급가속 엔진음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가속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다만 볼보 측이 "동일 연식, 동일 모델 차량이라도 엔진 구동음은 차량 관리 상태와 가속 페달 조작 방식에 따라 다를 수 있다"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고 답했죠.

'A씨가 변속 레버를 조작했는가'에 대해선 "해당 구간부에서 변속 레버 조작과 유사한 음향신호로 추정 가능한 음향정보는 관찰되지 않았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업체는 변속 레버를 조작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도 "모의실험을 통한 조작부의 작동 반응을 샘플링한 음향 데이터와 대조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고 추가 실험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노컷뉴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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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급발진 소송' 언급한 재판부… "여러 생각이 듭니다"

이날 변론 말미에 재판부는 2020년 8월 급발진을 인정하며 유족의 손을 들어준 'BMW 사고' 2심 재판을 언급합니다.

2018년 5월 발생한 BMW 사고 당시 운전자는 200km/h의 속도로 약 300m를 달렸고, 결국 벽에 충돌해 사망합니다. 주목할 점은 운전자가 급가속 직후 차선을 바꿔 갓길로 달렸고, 비상등을 작동했다는 점입니다. 주변에 위험을 알린 것이죠. 급가속 이전에는 80~100km/h 속도로 달린 점도 확인됐습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유족 패소 판결을 내린 1심 판결을 뒤집고, 급발진을 인정합니다. 차량이 갓길로 달렸고, 비상등을 작동한 점을 볼 때 운전자는 정상적으로 차를 몰았고 결함은 제조사의 영역에 있다고 '추정'한 겁니다.

재판부는 "이 사고는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고 있던 상태에서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 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결국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판단된다"라고 봤습니다.

볼보 재판부도 이 점에 주목한 겁니다. 그러면서 현행 제조물 책임법에 대한 생각도 말합니다.

23.05.17 서울중앙지법, 볼보 상대 2억 원 손해배상 소송 변론 기일 中
재판부 "그 판결을 보면 (결함을) 거의 추정했더라고요. 제조물 책임에서 고도의 기술이 집약돼 당사자가 입증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그 재판부가 판단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조물 책임 관련해서 급발진 증명 법리 부분은 정정돼야 한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법리적으로"

A씨 측 "네. 맞습니다. 자율주행 레벨2 차량은 제조물 중에서 고도의 인공지능(AI)이 적용된 것이고 급발진도 과거 급발진과 다릅니다"

재판부 "그러니까요. 자율주행 부분도 계속 나올텐데 종래 제조물 책임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는지 여러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로 이 재판이 흥미로운 점은 재판부가 시대의 변화, 신기술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는 겁니다.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하며 적극적인 실험 의지를 보이고 있죠. 이날 변론에서도 재판부는 "원고 측과 피고 측 두 변호사가 전문가시니까요"라고 말하며 양측의 적극적인 변론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볼보 재판은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소송 때 변론을 겨뤘던 이들이 다시 맞붙은 재판입니다. A씨 측은 폭스바겐 차주들을 변호했던 하종선 변호사가, 볼보 측은 폭스바겐 변호를 맡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변호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 변호사는 BMW 연쇄 화재 사건 당시에도 차주들의 변호를 맡았는데, 이번에 시작된 '강릉 티볼리 급발진 의심 사고'도 변호하고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한 사고 당시 상황을 완벽히 볼 순 없습니다. 게다가 자율주행이란 단어가 보여주듯이 기술이 차량에 개입하는 일이 확연히 늘어난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감정이 더욱 중요합니다.

급발진일 수도, 운전자의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다양하고 적극적인 감정은 진실에 한 발자국이나마 다가가려는 우리들의 노력일 겁니다. 고무적인 점은 법원도 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볼보 재판부에 이어 강릉 급발진 의심 재판부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소장이 접수된 것이 1월인데 벌써 5월이 됐고, 그 사이 기일 통지를 했지만 피고 측에서 소송에 대해 뭔가 신속하게 대응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피고 측이 감수해야 하고요. 원고가 신청한 증거는 다 채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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