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단독] 세금 깎아주는 조특법 695건 역대 최대…재정 멍든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뉴스1


지난달 11일 국회 김경만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6명은 전기요금에 붙는 부가가치세(10%)를 면제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택·농사용 전기, 주택용 도시가스와 지역난방에 대해 2024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부가세를 면제하는 게 핵심이다. 2년간 면세 규모만 3조5455억원에 달한다.

“전기·가스요금 인상 취지와 정면충돌한다”는 지적에 대해 김 의원은 “서민 부담을 덜어주고, 에너지 공기업에 부가세를 환급해 적자 규모를 줄여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국민 부담은 줄지 몰라도 정부가 거둬야 할 세금이 줄어드는 만큼 ‘조삼모사(朝三暮四)’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결국 재정으로 공기업을 지원하는 법안이라 재정 건전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에서 ‘감세’를 명분으로 한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법안 발의가 줄을 잇고 있다. 법안 상당수가 만능열쇠처럼 활용한 수단이 ‘조특법’이다. 거둬야 할 세금을 걷지 않는 ‘조세지출’ 방식의 개정 법안이 대부분인데, 사실상 돈을 뿌리는 내용이다. 가뜩이나 세수(국세 수입)가 부족해 재정 부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서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1대 국회에서 의원이 발의한 조특법안이 695건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대 규모다. 조특법은 16대 국회(2000~2004년)에서 61건을 발의한 뒤 17대(2004~2008년) 152건→18대(2008~2012년) 344건→19대(2012~2016년) 354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그러다 지난 20대 국회(2016~2020년)에서 606건으로 급증했다. 21대 국회는 아직 회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지난 국회에서 발의한 조특법 건수를 훌쩍 넘어섰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몰(日沒)을 앞둔 감세 혜택을 연장하는 식이 대표적이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월 택시 연료에 붙는 개별소비세·교육세 합계액 중 ㎏당 40원, 택시 부가세의 99%를 각각 감면하는 내용의 조특법 일몰 기간(올해 말)을 2026년 말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택시 업계가 반기는 법안이다. 고용진 민주당 의원은 같은 달 올해 말 종료하는 중소기업 취업자 소득세 감면 조치를 중견기업 취업자로 확대하고, 일몰 기간도 2026년 말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의 조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3월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말까지인 농어업용 석유류 부가세·개소세 면제 기간을 2026년 말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의 조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면세유 제도는 1998년 일몰 기한제를 도입한 이후 2∼3년 주기로 수차례 연장됐다. 일몰을 5년 연장할 경우 세수가 6조8854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과도한 세 부담을 덜어 경제주체의 활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만든 법안이지만 조세 감면 효과가 불분명한데도 계속 연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조세특례는 잘 활용하면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고 취약계층을 돕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특례를 손쉽게 허용하고, 방만하게 운영할 경우 국가 재정 기반이 흔들린다. 조특법에 대한 평가·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본래 법을 개정하기 어려울 경우 조특법을 개정해 감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누더기 땜질’을 남발하는 모양새”라며 “어디까지나 법률상 예외적인 ‘특례’인 만큼 효과가 검증된 범위로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올해 대규모 ‘세수 펑크’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올해 1~3월 국세 수입은 1년 전보다 24조원 감소했다. 연간 세수가 20조원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이후 세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무더기 조특법 개정을 통한 감세는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건전 재정’ 기조를 달성하려면 불요불급한 지출부터 줄여야 한다. 더불어 누더기 세금 감면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종료할 예정인 비과세·감면 제도 74개 중 64개(86.5%)를 올해도 연장했다. 지난 3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3년도 조세지출 기본계획’에 따르면 올해 국세감면액 전망치는 69조3000억원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국세감면액(63조5000억원)보다 5조8000억원 늘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감면 실적이 없거나 감세 효과를 증명하지 못하는 법안부터 없애야 한다”며 “특히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거나, 일몰을 정해놓은 법안마다 딱지를 붙여 매년 감면 연장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