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4 (화)

이슈 시위와 파업

법 허점 노린 ‘변칙 1인시위’에 기업들 몸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인시위 신고 땐 다수집회와 달리

현수막 개수·천막 등 제한 받아

업계 “법개정 통해 변칙 시위 차단”

헤럴드경제

서울 송파구 한 대기업 사옥 앞에서 시위자가 천막과 현수막을 설치한 모습. [독자 제공]


“원색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현수막이 늘어져 있는 광경을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무엇보다 비즈니스 목적으로 회사 사옥을 방문하는 거래처 관계자들이 ‘(회사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 때마다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법 규정의 허점을 이용한 무분별한 ‘변칙 시위’로 대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시위자가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로 신고를 하고 사실상 1인 시위를 벌이거나, 실제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를 1인 시위로 가장하는 방식으로 수년째 사옥 앞을 점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시위가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규정의 빈틈을 악용한 ‘변칙 1인 시위’라고 입을 모은다.

집시법상 ‘집회’ 또는 ‘시위’를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이 공동의 목적을 갖고 모여야 한다. 현수막을 지자체 신고 후 지정 게시대에만 내걸 수 있는 1인 시위와 달리 다수 집회 시에는 옥외집회(시위·행진) 신고서에 준비물로 기재만 하면 숫자 제한 없이 신고 기간 동안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 즉,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로 신고한 시위자 한 사람이 집시법상 집회 준비물로 신고만 했다면 수십, 수백장의 현수막을 설치해도 이를 제재할 수 없는 셈이다.

실제 국내 대기업 사옥 인근에서 벌이는 시위 대부분이 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인근에서 사실상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자신이 일하던 판매 대리점 대표와의 불화 등으로 계약이 해지된 이후 이와 무관한 기아를 향해 근거 없는 ‘원직 복직’을 주장하고 있는 A씨는 당초 1인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게시된 현수막이 1인 시위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제지를 당하자 다수 집회 신고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현재도 사실상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관할 경찰서에는 공동대책위 명의로 매일 20여 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개최한다고 신고하고 있다. A씨 외에도 K사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B씨, S병원 정문 앞에서 역시 1인 시위를 벌이는 C씨 등도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로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칙 1인 시위에 따른 피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집회 신고가 된 변칙 1인 시위 현장 주변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있는 내용으로 채워진 현수막과 천막들이 다수 설치돼 있다. 일부 현수막과 천막은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 유발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외에도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를 참여자 간 거리를 두는 등의 변칙적인 방식을 통해 1인 시위로 가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1인 시위는 장소 제한이 없어 다른 집회 신고가 돼 있는 곳에서도 자유롭게 시위를 벌일 수 있는 데다 주간 평균 75데시벨(dB), 야간 평균 65dB로 규정된 집시법상 소음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장 감독을 강화하고 실효성 있는 법 개정을 통해 변칙 시위로 이어지는 통로를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관할 지자체 등이 실제 집회 참여 인원 확인 등 현장 감독을 강화하고, 신고 내용과 다른 집회가 일정 기간 이어질 경우 집회 개최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등 실효성 있는 법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다양화하는 변칙 1인 시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법 개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집회 결사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다중 1인 시위’ 또는 ‘편법 집회 신고’ 등 법 규정의 허점을 악용한 변칙 1인 시위로 고통받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 또한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서재근 기자

likehyo85@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