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입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그 존재 자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입이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귀가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탄 입이 없는 사람들이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방식으로 말하기를 하려 할 때 ‘시민’들은 소리친다. ‘시민들 불편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대화의 구성요소에는 화자, 청자, 메시지 이외에 ‘잡음(noise)’도 있다. 이 방해물은 말하는 입과 듣는 귀 사이에 존재한다. 화자의 발화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거나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필터를 씌운다. 그렇게 입이 없는 사람의 말하기와 귀가 없는 사람의 듣기는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입이 없는 사람들에게 시민으로서의 지위마저 박탈시키고 귀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입이 없는 자들을 비가시화해 서로의 연결도 단절시킨다. 입이 없는 사람들의 말하기는 단순한 발화가 아니다. 정치 담론과 사회 권력의 지배층에 의해 말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 이들이, 사회와 문화 구조 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인지하며 정치적 주체로서 바로 서는 것에서부터 말하기는 시작된다. 지배 권력에서 배제된 위치를 자각한 이들의 말하기는 기존 사회구조에 균열을 일으킨다. 어떤 방해가 생기든 이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화자만큼이나 방해물을 치우고 화자의 메시지를 들으려는 주체적인 청자의 존재도 중요하다. 화자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다른 의도를 지니고 메시지를 편집하지 않으며 윤리적으로 듣기를 행하는 청자는 비로소 여태껏 듣지 못한 입이 없는 사람의 말하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누군가 말하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불편하지 않았던 일상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경찰은 지난 5월31일 민주노총의 도심 집회에서 불법행위가 발생할 경우 캡사이신 분사기를 활용해 해산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민주노총의 노동절 연대 집회 이후 6년 만에 집회 현장에 캡사이신 최루액 분사기가 등장했다. 정부와 여당은 0시부터 6시까지 야간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기 위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말하는 입과 듣는 귀 사이의 방해물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말하기와 듣기는 서로 다른 개별 주체가 각기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화자이자 청자로서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의 말을 듣고, 우리의 말을 하고 그 사이에 놓인 방해물을 함께 치우는 것이다.
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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