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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조회수 400만 육박한 ‘돌려차기’ 가해자 신상공개 영상···‘사적 제재’ 논란 왜 반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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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카라큘라 탐정사무소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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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의자 신상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되면서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가해자 신상을 직접 밝히는 ‘사적 제재’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신상을 밝힌 유튜버 등은 “국민의 알 권리와 범죄 예방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공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상공개를 하는 것은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의 주요 강력사건 피의자 신상공개 절차와 기준에 대한 논란도 함께 일고 있다.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에는 부산 부산진구의 오피스텔 공동현관문을 지나가던 한 여성을 발로 차 의식을 잃게 하고, 이 여성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의 신상이 공개됐다. 9분짜리 영상에는 A씨의 얼굴 사진과 이름, 생년월일, 키, 혈액형, 전과기록 등이 모두 공개됐다. 이 영상은 4일 오후 4시 기준 조회수 396만회에 이르렀다.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해당 영상에서 “처음에는 신상공개 청원을 넣었지만 A씨가 피고인 신분이어서 경찰에 (공개) 권한이 없다고 했다. 검찰에도 신청했지만 2심 진행중이라 안 됐다”며 “(가해자가) 더 민망하라고, 조금이라도 벌 더 받으라고 (신상공개) 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 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일 크다”고 말했다.

‘돌려차기’ 사건은 지난해 5월 부산진구의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문에서 일어났다. 부산지법은 지난해 10월 1심에서 A씨에게 살인미수죄를 적용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이후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항소해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심 재판부가 증거물에 대한 추가 감정 등을 결정했고, 피해자의 바지에서 A씨의 DNA가 검출되자 검찰은 이를 토대로 지난달 31일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고 징역 35년을 구형했다.

채널 운영자인 ‘카라큘라(예명)’는 영상을 통해 “수사기관에서 놓쳤던 가해자 신상정보 공개를 피해자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으며, (피해자가) 보복범죄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유튜버인 제가 피해자 고통을 분담해줄 방법을 떠올려 이 결론을 내게 된 것”이라며 신상 공개 이유를 밝혔다.

카라큘라는 이튿날 유튜브 커뮤니티 게시판에 “돌려차기남 신상 공개로 인해 48시간 뒤 수익 창출 제한 통보라니. 기운 빠지지만 어쩔 수 없다. 채널 운영에 힘 한번 실어달라”며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향신문

나쁜 집주인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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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튜버나 별도 온라인사이트에 피의자 또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신상 정보가 올라오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카라큘라 탐정사무소’에는 유튜버 표예림씨에게 학창시절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 4명 이름과 졸업사진, 근황이 공개됐다. 또 다른 채널에서도 40대 남성을 모텔로 부른 뒤 폭행을 가한 혐의를 받는 10대 7명의 얼굴, 이름, 나이, 학교 등 정보를 담은 영상이 지난 1월 게시됐다가 삭제됐다. 지난해에는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임대인의 이름과 얼굴, 주소를 올린 ‘나쁜 집주인’ 사이트가 개설되기도 했다.

이런 사례가 나타날 때마다 “가해자 신상을 밝혀 더 큰 피해를 막아야 한다” “수사기관이 못하는 일을 대신 하는 것이다”라며 사적 제재에 찬성하는 여론과, “공인되지 않은 소수가 공개 사유와 공개 범위를 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개인정보 공개를 사회적 합의 없이 하는 것은 불법이며,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도 벗어난다”는 반대 여론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공적인 신상 공개가 어려워지자 ‘정의’를 명목으로 내세워 유튜브 등 사적 영역에서 피의자 신상 공개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경찰청은 지난 1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과외 중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인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정유정(23)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다. 그러자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비롯해 ‘금천구 살인사건 피의자’ ‘인천 초등생 아동학대 사망사건’ 등 최근 발생한 다른 강력 사건의 피의자들 신상도 공개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경찰은 경찰 내부위원 3명과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되는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범죄자 신상공개를 결정한다. 공개 기준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때, 재범 방지와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다. 다만 공개 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기 쉬운 범위에 있는 등 모호성이 있는 데다, 사실상 공개심의 당시 여론이 심의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경찰청 인권위원을 지낸 박준영 변호사는 “사적 영역에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람은 ‘공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경제적인 보상이나 ‘자기 존재감’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공적 영역에서 공개 절차를 신중히 밟는다는 조건에서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전세사기 가해자, 음주운전자 등 신상공개 범위가 넓게 확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공개된 피의자의 주변 사람이 받는 고통, 잘못된 정보 유포, 극단적 선택 문제 등 신상공개에는 부작용이 따른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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