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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내년 학교 덮칠 'AI 교과서'…현장선 "내가 교사냐, AS 기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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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참관객들이 디지털 교과서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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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사 간 디지털 역량 격차가 크고 관련 교원이 부족해 혼란이 클 것이란 지적이다. 촉박한 개발 일정 때문에 교과서 완성도가 높지 않을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종이 교과서 대체할 수 있을까…교사들은 ‘반신반의’



9일 교육부는 국가교육위원회에 AI 디지털교과서 추진 방안을 보고했다. 전날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털교과서 도입 세부 추진 일정 등이 주요 내용이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해 2028년엔 초등 1·2학년을 제외한 전 학년이 디지털교과서를 쓰게 된다고 밝혔다. 적용 과목은 지난 2월 발표 당시 예고한 수학·영어·정보에서 국어·사회·과학 등으로 확대됐다. 도입 6개월 전인 내년 하반기엔 현장 검증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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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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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야심 찬 계획과 달리 여전히 현장 호응은 낮은 편이다. 지난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6751명 중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도움될 것이라는 답변은 37.5%에 불과했다.

교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교과서의 품질이다. 종이 교과서를 컴퓨터 파일로 전환하는 데 그친 기존 디지털교과서를 뛰어넘지 않으면 현장 확산이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교육부는 지난 2013년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해 초등 3~5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시범적용 했다. 하지만 활용도는 높지 않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으로 원격 수업이 활발하던 2020년에도 전국 초·중·고 교사 1879명 중 1229명(65.4%)이 디지털교과서를 쓰지 않았다.

당시 교사들이 디지털교과서를 외면한 핵심 원인은 부실한 학습 콘텐츠였다. “학생이 교과서에 필기하면 교사가 확인하거나, 학습 내용과 관련한 자료를 링크하는 등 PDF 수준에 머물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류도 있었다. 초등 4학년 사회 국정교과서에서는 홍콩의 전경 사진을 인천광역시로 싣는가 하면 제주 섭지코지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잘못 소개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현장 혼란을 우려해 디지털교과서 도입 첫해인 2025년부터 3년 간 종이 교과서와 병행 사용토록 했다. 이 기간 서책형 교과서를 대체 할만큼의 효용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새 교과서가 수업에 도움된다는 평가가 나오면 교사들은 당연히 쓰게 돼 있다”고 말했다.

낮은 현장 호응에 대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8일 기자회견에서 “교사들이 체험형 연수를 통해 그 효과성을 피부로 느낀다면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며 “교단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교원단체 등과 소통·협력하겠다”고 했다.



“원격수업 힘들어 관두는 교사도”…교사 역량 차 좁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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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AI디지털 교과서 추진 등 교육현안 당정협의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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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교육부는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시작되는 2025년 전까지 우선 적용 교과 교원 전체를 대상으로 집중 연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선도 그룹인 ‘터치(T.O.U.C.H) 교사단’의 동료연수, 액션러닝, 실기·실습, 토론 등 참여자 중심의 실전형 연수 방법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심민철 교육부 디지털정책기획관은 “2025년부터 적용되는 과목이 영어·수학·정보교과인데, 초중등 합쳐서 16만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며 “올 겨울방학, 내년 여름·겨울방학 세 부분으로 나눠서 5만명, 5만명, 6만5000명씩 대규모 연수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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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8일 공개한 AI디지털교과서 대시보드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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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거 디지털 교육 분야의 선도 교사를 해 본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당장 우리 학교 30여명의 교사 중 디지털 기기를 다루고 관련 업무가 가능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학교엔 (디지털 역량이 높지 않은) 40대 이상 교사가 많은 데다, 코로나19 유행 당시엔 원격수업 힘들다며 명예퇴직 택하는 50대 선생님도 있었다. 이런 수준 차이를 선도교사 몇 명의 리더십만으로 좁히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디지털 역량의 격차는 일부 교원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보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는 “부분적으로 스마트 기기를 수업에 활용하는 지금도 기기 구입, 세팅, 유지·보수, 반출 여부 등의 업무가 나한테만 몰린다”며 “관련 교원 충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성준 대표는 “정보 교사들 사이에선 ‘내가 교사인지 컴퓨터 AS 기사인지 가끔 헷갈린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고 했다.

이 부총리는 관련 교원 충원 요구에 대해 “학생 수가 워낙 급감해 교원 수가 줄어도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유지될 전망이기 때문에 교실에서 교사들의 부담이 급증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민지·장윤서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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