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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러 극동서 쪼그라드는 한국…中 확장세에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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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악수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신화통신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최근 러시아 극동 지역 뉴스들 가운데 한국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중국 동북 지방 지린성이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항구를 자국의 '내륙 화물 교역 중계항'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소식이었다.

지린성이 식량과 석탄 등을 중국 남쪽 지방에 수송하기 위해 관세 등을 내지 않고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자국 항구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돼 물류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블라디보스토크항은 이미 2007년부터 지린성 북쪽에 있는 중국 헤이룽장성의 내륙 화물 교역 중계항으로도 이용돼 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중국 다른 지역에 블라디보스토크항 사용을 추가로 승인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양국이 경제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단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극동 지역에서 목격되는 양국의 밀착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산 천연가스를 극동 지역에서 중국 동북 지역으로 공급하는 양국 간 협정을 최종 승인했다.

양국 간 물적·인적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지방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지난 15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32차 하얼빈 무역·경제박람회를 찾은 올레그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는 중국 측과 연 회의에서 "화물 운송과 여행객 방문을 30% 더 늘리기 위해 양국 접경지역의 다수 국경검문소를 24시간 운영체제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또 "곡물과 꿀, 목재 가공을 위한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다"는 코제먀코 주지사 언급에 중국 측도 "이러한 프로젝트 이행은 양 지역 주민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고 답했다.

앞서 연해주 정부는 2024년까지 중국과의 교역 규모를 100억 달러(약 13조원)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밝힌 바 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하바롭스크주, 아무르주, 유대인자치주 등 3개 지역에 있는 국경검문소 4곳도 지난 10일부터 여행객들의 양국 간 왕래를 재개했다.

최근 퍄오양판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중국 총영사는 "중국·러시아 간 관계가 급속히 발전하는 상황에서 사업 분야 협력도 확대되는 까닭에 양국 언어와 문화를 잘 아는 전문가들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국의 활발한 교류의 영향으로 최근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와 대학, 어학교육원 등에서는 지난해보다 늘어난 중국인들을 볼 수 있다.

반면 극동 지역에 진출한 우리 공공기관 및 기업들의 활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위축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확산(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기업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연합뉴스

잡목만 울창한 '연해주 한·러 산단' 예정 부지
[촬영 최수호]



우리 정부의 신(新)북방정책에 따라 한국·러시아 간 경제 협력을 상징하는 사업으로 여겨졌던 '연해주 한·러 경제협력 산업단지' 조성사업은 현재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 극동개발공사(FEDC)와 사업 이행약정을 체결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21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 현지법인도 설립했지만, 사업 추진 방식을 두고 양 기관이 이견을 보이면서 지금까지도 공사에 착공하지 못했다.

사업이 진척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현지의 러시아 기업과 중국 기업 등이 사업 예정 부지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LH 또한 현지법인 운영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기 위해 최근 사무실 규모와 파견 인력 등을 줄였다.

1998년 러시아 연해주와 자매결연한 강원도도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 등으로 올해 초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무역사무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가 현지 교민과 지역민 등이 반발하자 일단 올해 말까지 운영을 이어가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러시아와 한국을 잇는 하늘길이 막힌 상태에서도 블라디보스토크 사업소 운영을 유지했던 에어부산[298690]도 현재 현지 사업소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이밖에 무역·유통, 관광, 수산 등 분야의 다수 한국 기업이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극동 지역에서 이미 철수했거나 현지인 운영 체제로 전환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후 러시아가 유럽 등을 대신할 새 협력 파트너를 찾기 위해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서 러시아에서 극동 지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떠올랐다.

이런 까닭에 러시아 정부는 극동 지역 내 각종 인프라 구축을 비롯해 극동 지역과 이어지는 북극해 항로(NSR) 개발 등에도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 영향으로 현재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지만, 향후에도 중러 밀착이 언제까지나 지속하리라고 보장할 수 없는 까닭에 우리 정부가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 극동 지역에 있는 우리 기관·기업 관계자들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일단은 버티고 보자"는 심정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들은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멀어진 우리 정부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극동 지역 개척에 공을 들여온 한국 기관·기업의 규모가 쪼그라드는 현실과 중국의 확장세가 확연하게 대비되는 요즘의 상황이 못내 씁쓸하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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