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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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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다다익선? '가짜병' 진단받아 돈·시간만 날릴 수도 [건강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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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건강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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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질병의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를 위해서다. 저마다 고심 끝에 추려 검진 리스트를 작성한다. 나름의 시기 적절성과 비용효과성을 고려한 판단이다. ‘다다익선’이라는 전제도 깔려 있다. 항목에 있는 검사들이 적어도 내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의외다. 국내 의학 분야 석학이 모인 학술단체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슬기로운 건강검진을 위한 대한민국의학한림원 권고문’을 내놨다. 161페이지짜리 보고서다. ‘과잉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진행된 두 차례의 포럼과 검진 각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물이다. 이 권고문의 핵심은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두지 않는 건강검진은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이다. 의학한림원 왕규창 원장은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건강검진을 시행하면 위양성(질병이 있다는 오진) 증가로 많은 국민을 후속 진단 또는 불필요한 치료 과정으로 유도해 자원 낭비와 국민 불안감 증가 등의 부작용을 유발한다”고 밝혔다. 자칫 과잉검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 없는 검진 땐 부작용



이 권고문은 먼저 ‘권고하지 않는 암 건강검진’을 제시한다. ▶암 건강검진 목적의 갑상샘 초음파검사 ▶폐암 위험도가 낮은 사람에서 암 건강검진 목적의 저선량 흉부CT 검사 ▶췌장암 건강검진 목적의 종양표지자, 초음파, CT 검사 ▶암 건강검진 목적의 PET-CT(양전자 단층촬영) ▶기대여명이 10년 이하인 경우 유방암, 대장암, 전립샘암 등의 암 건강검진 등 총 5가지다.

우선 갑상샘암 위험이 높지 않은 일반인이 매년 초음파검사를 받는 것은 ‘과잉검진’이라는 것이다. 발병 빈도는 높지만 진행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치료 시 예후가 상당히 좋아 매년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게 의학한림원의 입장이다. 양성종양인 결절이나 낭종, 즉 딱딱한 혹이나 물혹들이 최소 20~30%, 많게는 40~50%에서 발견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치료하지 않아도 문제없다. 이상 소견은 추가 검사로 이어지고, 비용 낭비와 함께 불필요한 불안감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우리나라는 55~74세 30년 이상 흡연력이 있는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폐암 확인을 위한 흉부 저선량컴퓨터단층촬영(LDCT) 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고위험군이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도 흉부CT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건강검진 권고 기준으로 참고하는 미국질병예방서비스특별위원회(USPSTF) 지침에 따르면 흉부CT 검사 권고 대상은 20년 이상의 흡연력이 있으면서 현재 흡연자이거나 금연한 지 15년 이내인 50~80세 성인이다.

췌장암도 마찬가지다. ‘한국 췌장암 진료 가이드라인’(2021)에선 췌장암이 의심되는 환자에서 선별검사로 췌장CT를 권고하지만 CT는 방사선 노출, 조영제 부작용 및 비용 등으로 일반인 대상 선별검사로는 부적합하다.

전신 양전자단층촬영술(PET)의 경우에는 증상이 없는 성인에게 암 조기검진 목적으로 시행하기에 그 역할이나 유용성에 관한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PET-CT는 조기 위암이나 전립샘암의 발견율은 상대적으로 낮고, 천천히 자라는 림프종 등에서 감별이 어렵다.

마지막으로 기대여명이 10년 이하인 경우, 즉 70대 중반이 넘는 고령의 경우 암 진행 속도가 더디며 암 발견 후 치료 시작에서 사망에 이르는 기간을 고려했을 때 유방암, 대장암, 전립샘암 등 암 검진을 통한 이득보다 위해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당연시하던 암 검진, 과잉 가능성



이 권고문의 책임연구자인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교실 이재호 교수는 “건강검진은 증상이 없고 외견상으로도 건강해 보이지만 질병에 처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며 “프로그램의 추천과 제공은 추가 검사와 치료를 포함하는 건강검진 경로가 비용이 적정하고, 위해보다 편익이 더 많다는 근거가 있을 때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건강검진의 편익에 대해 선택권 증가, 중증도·발생률·사망률의 감소를 제시하면서도 위해 요소로

▶과잉진단 ▶위양성 ▶위음성(질병이 없다는 오진) ▶건강자원 남용 등을 꼽은 바 있다. 건강검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또한 의학한림원은 ‘권고하지 않는 일반 건강검진’으로 ▶주치의와 상의하지 않은 연례적인 건강검진 ▶건강검진 목적의 비타민D 검사 ▶건강검진 목적의 뇌 MRI 검사 ▶증상이 없는 노인에게서 일상적인 치매 건강검진 ▶심혈관 위험도가 낮은 사람에서 건강검진 목적의 관상동맥CT 검사를 꼽았다. 이들 검사 또한 근거가 부족하거나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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