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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음악을 지휘한다고?…국립국악관현악단, 국내 최초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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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에서 인간 지휘자 대체 못할 한계 뚜렷

‘로봇이 지휘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2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 연습실에 인간 형상을 한 ‘에버(EveR)6(식스)’가 지휘를 하러 등장했다. 로봇이 지휘를 한 사례가 해외에선 있었지만 국내에선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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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관현악단 연습실에서 국내 최초 지휘하는 로봇 '에버 6'와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만다흐빌레그 비르바 작곡의 '말발굽 소리' 지휘와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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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정도 키에 어깨, 팔꿈치, 손목 등 관절을 구부릴 수 있는 이 로봇은 오른 손에 지휘봉을 들었다. 사회자가 “연주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안내하자 로봇이 두 팔을 움직였다. 에버6가 오른손에 쥔 지휘봉을 든 순간 징 소리가 울려 퍼지며 국악관현악단의 연주가 시작됐다. 박자에 맞춰 지휘봉을 흔들던 에버6가 중간 중간 왼손을 들어 신호를 줄 때는 연주 소리가 웅장해졌다. 이렇게 에버6는 오는 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IV ‘부재(不在)’를 일부 시연했다.

여미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직무대행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로봇, 인공지능 등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졌다. 이번 공연은 이런 고민과 맞닿아 있다”며 “예술 영역에서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으로 시작했다”고 ‘부재’ 공연을 소개했다.

정확하고 섬세한 팔 동작과 지휘 도중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에버6를 보면 ‘지휘하는 로봇’다웠지만 아직은 세련된 기계적인 움직임일 뿐이었다. 수많은 음표에 담긴 작곡가의 음악 세계와 작곡 의도를 이해한 뒤 악단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소리를 조율해가면서 최선의 하모니를 끌어내는 ‘인간 지휘자’의 역할에는 범접하지 못했다. 지휘하는 모습만 봐도 인간 지휘자가 다양한 몸짓으로 선율의 흐름, 강약 등을 조절하는 반면 로봇 지휘자는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단순한 동작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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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에버6’가 2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 ‘부재’ 연습실 공개에서 관현악단을 지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버6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챗GPT 등 생성형 AI(인공지능)가 아니다. 사람 지휘자의 동작을 ‘모션 캡처(몸에 센서를 달아 인체 움직임을 디지털로 옮기는 것)’해 프로그래밍한 로봇이다. 에버6를 개발한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이날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에버6는 공연 전 짜인 프로그램대로 동작을 한다”며 “1단계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보여드린 것이고, 차기에는 데이터 학습 등을 통해 ‘몇 박자의 웅장한 리듬으로 지휘해줘’라고 했을 때 이것을 생성해 지휘자가 원하는 보조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봇이 지휘자로 나선 시도는 2008년 일본의 ‘아시모(Asimo)’, 2017년 스위스의 협동로봇 ‘유미(Yumi)’, 2018년 일본의 2세대 AI 휴머노이드 로봇 ‘알터2’와 2020년 ‘알터3’ 등 세계에서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에버6 이전 모델인 에버3가 2009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린이 공연에 소리꾼으로 무대에 오른 바 있다.

물론 에버6가 기술 발전에 따라 이전 모델보다 몰라보게 진화한 건 사실이지만 인간 지휘자를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지점이 분명했다. 에버6와 함께 공연할 부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 최수열은 “지휘자라기보다 지휘 동작을 하는 ‘퍼포머’라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에버6의 지휘 동작이 굉장히 섬세해 놀랐다”면서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수열은 “지휘 동작을 하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듣지 못한다”며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허설에 참여해 악단의 소리를 듣고, 악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교정하고, 제안하고, 설득하는 것인데, 에버6에게는 이런 기능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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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지휘자 '에버6'가 2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연습실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Ⅳ '부재(不在)' 연주 시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에버6와 최수열은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가 손일훈이 만든 곡 ‘감’을 지휘한다. 이 곡은 오선지에 음표를 그린 악보 없이 30주기로 나눠진 형식에 어떻게 연주하라는 설명만 적힌 작품이다. 정해진 틀 안에서 지휘자와 연주자가 교감하며 만들어 가야하는 곡으로 연주자들과의 교감은 최수열이, 곡의 전반적인 박자를 맞추는 일은 에버6가 담당한다. 손일훈은 “이 작품은 악보가 없이 20명의 연주자가 제각각 연주를 하는데, 인간 지휘자는 교감을 이끌어내고 그 길잡이를 해주는 것이 로봇 지휘자”라며 “‘로봇이 어디까지 인간을 따라올까’를 생각하다 ‘감’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최수열은 “결정적으로 에버6에게는 호흡이 없다. 오늘 시연 때도 위험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건 인간의 호흡과 연관돼 있다”며 “모든 음악에는 호흡이 존재하는데, 에버6는 호흡이 없다 보니 정확하게 지휘하는데도 (악단보다) 앞서나가는 오류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이 지휘자의 예술적인 영역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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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지휘자 '에버6'와 지휘자 최수열이 2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연습실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Ⅳ '부재(不在)' 연주 시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다만, 냉정한 로봇의 지휘를 따라야 하는 만큼 사람(연주자)들이 로봇을 배려하며 연주하느라 더 집중하면서 상호작용하게 하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최수열은 “(로봇처럼) 눈치도 안 보고 밀어붙이는 정확한 존재가 있을 때의 불편함에 대해 사람끼리 교감하는 것을 느꼈고, 에버6가 단원들이 서로 교감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으로 함께 연주에 참여하는 여미순 직무대행은 “관현악 연주에서는 악단의 상호 소통을 위해 곡이 정해진 템포보다 느려지기도, 빨라지기도 하는데 로봇 지휘자는 절대 템포를 양보하지 않는다”며 “연주 과정에서 로봇은 배려하지 않지만 인간이 염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할까 굉장히 집중하고 배려하게 된다”고 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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