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곳곳 수년째 도로 무단 점용 추모시설 그대로
"합의 철거가 최선이나 시민 공감 못하면 공권력 집행 필요"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대표적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지난 2월4일 참사 100일을 맞아 거리 행진을 하던 중 서울광장에 기습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했다. 서울시는 분향소를 불법 시설물로 규정해 서울광장 무단 점유 변상금 3000만원을 부과하고, 여러 차례 행정대집행 예고를 했지만, 자진 철거 여부는 미지수다.
서울시의회 앞에는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세월호 기억공간'이 있다. 이 시설은 원래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다가, 광장 재구조화 공사가 진행되면서 지난해 6월을 기한으로 서울시의회 본관 앞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 기한이 1년 이상 지난 현재까지 이 시설은 인도를 무단 점유한 채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강제 철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부지 무단 점유 변상금을 고지하며 유족 측과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대화 결과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강제 철거 등 물리적인 해결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백신희생자 합동분향소/사진=최태원 기자 skking@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청계천 시작점인 청계광장 초입과 서울시의회 앞에는 '코로나19백신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이 역시 지난해 1월11일 지자체 허가 없이 기습적으로 설치됐다. 이후 서울 중구청에서 여러 차례 자진 철거 계고서를 보냈지만, 유족들은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시민 안전을 위해선 철거해야 하지만, 대집행 과정에서의 충돌로 인한 안전 문제도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보행자, 특히 장애인들이 합동분향소 때문에 통행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 신고 등이 연계돼 철거가 곤란한 사례도 있다.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승강장 인근의 고(故) 손정민씨 추모공간이 그렇다. 손씨는 2021년 4월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시는 같은 해 11월부터 관리자들에게 자진 철거를 요청하고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인근 주민과 공원 나들이객의 민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변호사 등 전문가 조언을 구해보니 불법 점용은 맞지만, 간헐적으로 집회 신고가 되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강제 철거를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허가 기한이 지난 추모시설이 철수되지 않는 이유는 양측의 입장차이 때문이다. 유족 측은 대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선호한다. 사건이 쉽게 잊히지 않고, 많은 추모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두경 코로나19 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장은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는데, 코로나19 상황이 해소되면서 백신 피해자들은 국민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광화문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 분향소를 두고 버티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당초 참사 장소 인근 녹사평 역사 내 공간을 제안했지만 유족들은 서울광장을 고수하며 거부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에 대형 참사가 계속 터지면서 피해 당사자와 가족 등을 법적 테두리를 넘어서까지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형 인명사고 등 사회적 참사를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목적으로는 어느 정도 법을 어겨도 된다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고된 집회 기간을 벗어나 장기적으로 부지를 점용하거나 부대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사회적인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서 실정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재 서울시는 당장 강제집행을 하지는 않겠지만 공공시설 관리 원칙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라고 제안한다. 장 교수는 "불법을 묵인하기 시작하면 관행이 된다. 법이 유명무실해지면 국민이 피해를 받는다"며 "하지만 공론화 과정 없이 철거를 집행하면 양비론으로 번지게 되므로, 추모 시설 설치 단체에 시민의 통행 불편과 수면권 침해 등 공공의 피해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형 참사에 대해서는 추모 공간이 필요한 건 맞다.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시와 추모단체들이 대화로 대안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라며 "그러나 시민 다수가 공감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면 공권력 집행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