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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이슈 흔들리는 수입 곡물 시장

'흑해곡물협정'이 뭐길래?...세계 곳곳 식량확보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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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곡물협정은 오늘부터 효력이 없다.” (드미트리 페스코프·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을 보장했던 '흑해곡물협정' 18일(현지시간) 종료됐습니다. 러시아가 협정 연장을 거부한 데 따른 것입니다.

세계의 '곡물창고'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막히면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식량 위기가 다시 불거질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흑해곡물협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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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를 지나는 곡물 수출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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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곡물협정이란 흑해를 오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곡물 수출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협정입니다. 전쟁 중에도 곡물 수출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한 협정이죠.

우크라이나는 농산물 수출 세계 4위인 농업 국가입니다. 전 세계 밀 수출의 10%, 보리의 15~20% 이상, 해바라기유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를 '세계의 빵 바구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은 사실상 차단됐습니다. 그러자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식량 위기가 불거졌죠. 협정 체결 직전인 지난해 6월 세계 밀 가격은 전년 대비 56.5%, 옥수수 가격은 15.7% 급등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곡물 의존도가 높은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 위기가 심각했습니다.

결국 UN과 튀르키예가 중재에 나섰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맺도록 한 건데요. 지난해 7월 22일 협정을 맺은 뒤 8월부터 우크라이나 3개 항만 봉쇄가 풀리고 선박을 통한 곡물 수출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UN은 이 협정으로 곡물 공급이 안정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20% 이상 하락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집트와 레바논 등 수입 식량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겁니다.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 기아에 시달리는 최빈국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흑해곡물협정 이후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72만 5000톤이 이런 나라들에 국제 원조로 전달됐죠.

“러시아 곡물·비료 수출 제한돼”…러시아가 협정 중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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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밀을 수확하는 모습. 〈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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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은 120일 동안 유효하며 갱신 가능한 형태로 체결됐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처음 협정을 맺은 뒤 세 차례에 걸쳐 협정을 연장해 지금까지 유지해왔습니다.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의 대러 제재 때문에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 수출이 제한되고 있다면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120일인 협정 기한을 60일로 줄여 연장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협정을 탈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죠.

그러다가 4번째 협정 연장을 앞두고 러시아가 협정 종료를 발표한 겁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 관련 사항이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협정이 효력을 잃었다”면서 “오늘부터 협정은 무효다. 사실상 협정이 종료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밀선물 가격 3.0% 올라…아프리카·중동 등 식량위기 우려



러시아가 협정 종료를 선언하면서 곡물 가격은 벌써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서 밀 선물 가격은 부셸(곡물 중량 단위·27.2kg)당 6.81달러로 3.0% 올랐습니다. 옥수수 가격은 부셸당 5.21달러로 1.4% 상승했습니다.

곡물 수출길이 막히면 앞으로 빵과 파스타 등 주요 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지난해 상황과 비교하면 가격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브라질과 러시아 등이 밀과 옥수수 수출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영향이 적더라도, 사태가 길어지면 아프리카나 중동 국가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프리카 소말리아입니다. 소말리아는 우크라이나산 식량 의존도가 높습니다. 국제사회 원조가 확대되면서 우크라이나산 밀수입 규모가 2021년 3만1000톤에서 지난해 8만4000톤으로 급증했죠.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길이 막히면 식량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상인들은 가격 상승을 우려해 벌써부터 재고 확보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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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한 빵집 모습.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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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무함마드 오스만은 로이터통신에 “도매상들이 가격을 올리기 전에 곡물을 사놔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고객들이 밀을 살 수조차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케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코리 싱오에이 케냐 외교부 차관은 “식량 가격이 이미 최고치를 찍었다”면서 “1~2파운드였던 상품 가격이 4파운드로 두 배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지난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는 전 세계에서 3억 4900만 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밝혔습니다. 기근 위험에 처한 사람도 77만 2000명에 달합니다.

국제구조위원회(IRC)는 성명을 내고 “흑해 곡물 협정 만료에 따른 결과는 전 세계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 가장 가혹하게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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