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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인터뷰] “욕망의 광풍 뒤엔 온갖 푸어와 거지만 남아…집값과 거리 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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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푸어’, ‘벼락 거지’, ‘영끌 푸어’.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 어찌 이리 거지 타령이 많은지. 그것도 가계의 가장 큰 자산으로 꼽히는 부동산을 두고서.

어렵게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더니 글로벌 금융위기로 집값이 폭락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폭탄을 껴안고 살았던 하우스 푸어에 이어, 눈 깜짝할 새 올라버린 집값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상대적 박탈감의 뒤통수를 맞은 벼락 거지가 등장하더니,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지만 집값 하락과 치솟은 이자 부담으로 고통을 겪는 영끌 푸어까지 부동산 푸어 잔혹사가 세대를 이어 대물림하고 있다.

행복한 안식처여야 할 보금자리가 어쩌다 있어도 없어도 고통을 주는 계륵 같은 애물단지가 돼 버렸을까?

15년은 일간지 기자로, 이후 18년가량은 시장 전문가로서 부동산 시장을 살펴온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부동산 영끌 푸어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쓴 신간 ‘박원갑 박사의 부동산 심리 수업’을 통해 “한쪽에 쏠리지 않고 시장을 균형 있게 바라볼 때 집값에 휘둘리지 않는다”며 집에 대한 가치를 올바로 정립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심리가 시장을 움직인다”고 말한 그의 ‘부동산 생각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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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이 욕망의 대상으로 바뀐 집의 가치와 시장의 심리를 설명하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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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욕망의 결정체

-집이란 무엇인가?

“지금 세대가 생각하는 집의 의미는 이전 세대가 가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언제부턴가 집은 돈을 버는 수단이자 자산 증축이란 욕망의 결정체가 됐다. 과거의 내 집 마련은 잦은 이사 없이 온 가족이 편히 살 수 있는 삶의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삶의 안식처를 마련한 이후 가격이 오르는 것은 덤 혹은 운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지금의 집, 특히 아파트는 본말이 전도됐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살기 좋은 집보다는 팔기 좋은 집이 우선되는 자산 개념이 주택 구매의 결정 요소가 됐다. 집은 돈을 벌기 위한 욕망의 수단이 되면서 보금자리로서 갖는 집의 의미도 퇴행했다. 아파트는 거의 금융상품처럼 사고파는 시대가 됐다.

안식이 돼야 할 곳이 또 다른 고통의 진앙이 됐다.”

◇홈(Home) vs 하우스(House)

-홈이 아닌 하우스에 매몰되는 이유는?

“집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따지는 시대가 됐다.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63.5%가 될 정도로 많고 또 투자상품화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아파트가 표준・규격화되다 보니 정보 데이터의 계량화가 쉽고, 가격도 쉽게 포착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매주 아파트 시황이 발표된다. 잦은 정보 공개는 평소에 모르던 사람의 관심까지 끌게 한다. 자연스레 시세 차익을 위한 거래에 익숙해지고 가격 상승만 학수고대하는 투자가 늘었다.

재테크라는 관념이 내면화하면서 어느 순간 개인들도 아파트를 놓고 이윤을 목표로 하는 기업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윤 지향적 사고의 한 형태인 재테크가 마치 주택 시장의 전부인 것처럼 돼 버렸고, 많은 이들이 삶의 많은 부분을 부동산 자산을 추구하는 데 소모한다. 집이 집 이상이 되는 순간 보금자리의 기능보다 재화 가치에 더 매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살기 좋은 집과 팔기 좋은 집, 어떤 집을 선택해야 할까?

“집은 ‘홈(home)’과 ‘하우스(house)’라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홈이 삶의 안식처라면, 하우스는 투자 자산이다. 공간적 개념으로 홈이 고향 같은 장소의 개념이라면, 하우스는 건물의 개념이다. 홈과 하우스, 어느 하나 무시할 수 없다. 하우스와 홈의 비중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동안 집값 상승기엔 하우스에 초점을 맞췄다. 자본 이득을 노리는 갭투자가 시대적 유행을 한 것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갭투자는 하우스 비중이 100%다. 이제는 홈의 비중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대도시에서 홈 100%를 추구하긴 어렵고 또 비현실적이다. 결국 균형이다. 어겹겠지만 집을 살 때 살기 좋은 집(홈) 비중을 50%, 팔기 좋은 집(하우스) 비중을 50%로 맞춰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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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이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은 불안 심리에 비례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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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고민, 없어도 걱정

-집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먼저 집과 부동산을 따로 봐야 할 것 같다. 집은 우리에게 행복의 공간이지만 부동산은 결과에 따라 행복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다. 부동산을 산 사람들은 시세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집과 부동산은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다. 사고파는 부동산은 선택 재화일 뿐이다. 삶의 안식처인 집은 필수재이지만 부동산은 그냥 하나의 자산 항목일 뿐이다. 주식이나 채권처럼 포트폴리오의 하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파트 구입도 재테크 차원이라면 부동산 취득 행위로 봐야 한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미래 부동산은 지금보다 가치가 덜할 것이다. 분명 장밋빛 전망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인구와 가구가 동시에 줄어드는 시대가 오면 부동산은 자칫 위험자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 불패 신화가 이어지고, 아파트를 사놓고 우상향 기우제를 지내는 게 보통이다. 마치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종교적 소망처럼 말이다. 부동산에 대한 맹신은 말았으면 한다. 부동산은 언제든 우리를 배신할 수 있다.

아파트살이는 편안과 불안의 이중주다. 아파트의 주거 효용성은 뛰어나지만 수시로 노출되는 가격에 불안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먹거리로 따지면 가시 속 알밤 같다. 가시는 곧 가격이다. 알밤을 꺼내 먹을 때처럼 아파트에 거주할 때도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파트 시세를 너무 자주 확인하지 말고, 현금흐름을 만드는 또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인식하고 홈의 비중을 높여 ‘집 사랑꾼’이 되면 어떨까. 사는 곳의 공간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공간을 소중히 여긴다면 출렁이는 가격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벼락 거지’와 ‘영끌 푸어’, 누가 더 불행할까?

“‘(집이) 있어도 고민, 없어도 걱정’이란 말이 이래서 나온다. ‘벼락 거지’는 한동안 망설이다 집을 못 사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고, ‘영끌 푸어’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지만 집값 하락에 치솟는 이자 부담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말한다. 벼락 거지나 영끌 푸어의 대부분은 2030세대인 MZ세대가 겪고 있는 고통이다. 집값이 크게 떨어진 지금은 영끌 푸어가 더 힘들어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단박에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법의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가격이 다시 급등하지 않는 한 영끌 푸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영끌’ ‘빚투’ 방식에 대한 반성적 사유도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실패의 트라우마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음부터 다잡으면 좋겠다.”

◇부동산과 공포 비즈니스

-부동산에 대한 잘못된 심리가 있다면?

“부동산 시장을 바라볼 땐 참여자의 심리도 고려해서 판단하는 게 좋다. 매매시장에서는 ‘손실 회피’ ‘처분 효과’, 그리고 ‘미래 기대치’가 크게 작용한다. 불황이 찾아와도 가격이 바로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량부터 줄어든다.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 현재의 수급을 반영하는 전셋값은 크게 떨어지지만, 매매가격은 약세만 띠는 것은 이런 심리적 특성 때문이다.

요즘 소셜미디어가 새 정보 전달 매체로 떠올랐기 때문인지 공포론과 극단론이 자주 기승을 부린다. 괴담 수준의 공포론이 득세하는 것은 ‘공포 비즈니스’와 맞물려 있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옳지만 공포 비즈니스의 희생물은 되지 말아야 한다. 극단론은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단순화의 함정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요즘 이런 비관적인 극단론에 사람들이 많이 빠져든다는 거다. 내 삶이 힘들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추를 가져야 한다. 시장은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는 사이클 안에 존재한다. 한쪽 방향만 이야기하는 주장은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세상에 단순 도식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부동산으로 다친 마음, 어떻게 치유할까?

“힐링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먼저 자신의 실수를 탓하는 자책은 한두 번으로 그치고 털고 일어서야 한다. 지금 집을 안 사면 영영 못 살 것 같은 ‘상황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다.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상투를 잡고 고민하고 있다. 나만의 아픔이 아닌 세대의 아픔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한 번 투자에 실패했다고 인생의 낙오자는 아니다. 투자 실패라는 사건과 인생을 연결 짓는 것은 곤란하다. 젊은 시절 인생의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다만 갭투자자라면 자기 용서보다 자기 책임이 먼저다. 오로지 빚을 많이 내서 내 집에 살고 있는 ‘영끌 자가(自家)’와는 다르다. 갭투자자는 세입자로부터 빌린 돈(보증금)을 돌려주는 자기 책임을 다하고 나서 본인을 용서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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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이 부동산 시장을 읽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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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읽는 팁

-침체와 반등의 시그널이 있나?

“장바닥 시세를 눈여겨보면 도움이 된다. 요즘 부동산 시장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은 단톡방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아파트 시세는 단톡방이 결정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광속의 시대에는 부동산 시장도 생각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는 순간 구버전이 될 수 있다. 오죽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속자생존(速者生存)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나. 시장은 앞서 달아나고 있는데 지난 통계를 갖고 현재 시장을 분석하는 게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주택 시장의 단기 흐름은 통계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장바닥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하다. 2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 흐름을 보는 게 좋다. 특히 개인은 동네 랜드마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랜드마크 단지는 시장 흐름의 풍향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외지인 거래 비중과 단기 유동 자금 비율이 아파트값 바닥과 꼭지를 찾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외지인 거래 비중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서울 아파트를 사들인 비중(2006년 이후 평균 18.7%)이 지난해 12월 3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실거래가를 확인해 보면 아파트 값이 바닥인 시기다. 갑자기 외지인 거래 비중이 높아지면 바닥에서 변곡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또 지나 보니 단기 유동 자금 비율이 지나치게 높을 때 아파트 값은 상투였다. 현금과 요구불 예금 같이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많을수록 가격이 꼭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단기 유동 자금 비율(역대 평균 28.9%)은 집값이 폭등했던 2021년 9월 37.8%로 1986년 1월 이후 최고치였다.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두 지표가 모든 시점에서 맞아떨어지는 ‘만능 지표’가 아니란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일반화와 패턴화의 함정은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besa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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