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8월부터 고객 요구 시에만 종이 영수증 발급…"낭비 막아보자"
"환불 원하는 소비자에 불리", "문자·메일 안내 번거로워" 불만도 나와
프랑스 파리의 한 슈퍼마켓에 있는 자동 계산대 |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영수증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요즘 들어 프랑스 파리 집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계산이 끝나면 마치 녹음 방송을 트는 것처럼 이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3년 전 부임했을 때만 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손에 쥐여주던 영수증을 올해 들어 먼저 달라고 해야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면서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지출을 관리하기 위해 영수증을 모으는 습관이 생긴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다소 귀찮을 수 있는 변화였다.
하지만 영수증 챙기기를 깜빡하고 매장에 되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나니 이제는 영수증을 달라고 하는 게 몸에 익었다.
프랑스는 2020년 제정한 낭비 방지 순환경제법에 따라 올해 8월 1일부터 종이 영수증 자동 인쇄를 금지하는 조치를 전면 시행하고 있다.
고객이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종이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음으로써 종이 등 자원을 아끼고 유해물질과 접촉도 줄이자는 취지다.
전자기기처럼 품질 보증 기간이 있는 상품, 25유로 이상의 서비스, 호텔과 레스토랑의 청구서, 고속도로 요금소 및 주차장 등은 예외다.
판매자는 종이 영수증을 문자메시지, 이메일, QR 코드 등 디지털 영수증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이는 정부의 권고 사항일 뿐 따를 의무는 없다.
프랑스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종이 영수증은 카드 영수증, 품목별 상세 영수증, 바우처 등을 모두 합쳐 300억장에 달한다고 정부는 추산한다.
순환경제법을 발의한 파트리샤 미라레스 의원실에 따르면 슈퍼마켓 영수증을 합치면 길이가 849㎞,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수준이다.
품목별 상세 영수증만 따로 떼어보면 연 125억장이 나오는데, 이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종이 15만t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종이 영수증 |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은 이것이 나무 2천500만그루, 물 180억리터를 매년 절약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조치는 애초 1월 시행하려 했으나 준비 시간이 필요하고, 물가가 고공 행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4월, 또다시 8월로 연기됐다.
정부가 애써 마련한 정책 시행 시점을 두 번이나 미룬 이유는 소비자와 판매자 양측 모두에 존재하는 불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종이 영수증을 깜빡하고 요구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교환, 환불받지 못해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계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종이 영수증을 그 자리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불평도 있다.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영수증을 보내려면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등 일이 번거로워진다는 볼멘소리도 흘러나온다.
이들의 주장에도 공감이 가지만 소비자든, 판매자든 약간의 시간과 조금의 노력을 들인다면 해소될 정도의 불편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슈퍼마켓에서 영수증을 챙겨주지 않아 돌아가느라 성가셨던 감정은 금세 증발하고 영수증을 먼저 요구하는 습관만 남은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긴가민가해 할 이 정책의 효과는 지난해 말부터 종이 영수증을 고객이 요구할 때만 발급해온 냉동식품 기업 피카르에서 확인된다.
이 조치를 시행한 지 8개월 이상이 지난 현재 피카르 고객 중 58%는 영수증을 받아 가지 않고, 3%는 이메일로 수령한다고 경제잡지 카피탈이 보도했다.
이런 추세가 다른 매장으로 확산한다면, 더 나아가 다른 나라로도 확대된다면 꽤 괜찮은 환경 보호 효과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슈퍼마켓 |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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