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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디카프리오 왜 피나게 손 씻었나…나도 혹시? 강박장애 진단법 [건강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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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 정렬·문단속 확인도 강박

약물·인지행동 치료해야 좋아져

운동·명상도 증상 완화에 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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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주인공 멜빈(잭 니컬슨)은 매사에 규칙적이고 완고한 인물로 묘사된다. 현관문을 닫을 땐 다섯 번을 세며 잠근다. 전깃불 스위치도 다섯 번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개인용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 식사한다. 한 번 사용한 장갑도 미련 없이 버린다. 영화 ‘에비에이터’에서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땐 피가 날 때까지 반복적으로 씻는다. 모든 물건을 티슈로 싸서 집어 들고, 자신의 텔레비전 스위치를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한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강박장애를 앓고 있다는 점이다. 강박장애는 반복적인 강박사고와 강박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질환이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시도 때도 없이 하게 되는 상태다. 강박적 사고가 불안과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강박적 행동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박 행동을 하지 않으면 두려운 사건이 일어나 위험해진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규만 교수는 “강박장애를 겪는 환자는 강박사고와 강박 행동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막으려고 노력하지만, 실제 고통과 불안이 경감되진 않는 게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오염·세척 강박과 확인 강박 흔해



강박장애는 증상에 따른 유형이 다양하다. 첫째는 ‘오염·세척 강박’이다. 이 유형은 특별히 더럽지도 않은데 자신의 몸이 더럽다는 생각으로 자주 씻는 행동을 반복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거나 옷을 세탁하고 갈아입는다. 오염된 것 같다는 공포와 불안이 강박사고이고, 이러한 생각을 없애기 위해 세척하는 행위가 강박 행동인 셈이다.

둘째는 ‘확인 강박’이다. 외출 시 가스 불과 수도를 잘 잠갔는지, 문단속이 의심돼 계속 확인하는 경우다. 한 교수는 “강박장애는 오염·세척 강박과 확인 강박 유형이 가장 흔하다”며 “전체 강박장애 환자의 절반 이상은 이와 같은 강박 증상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셋째는 대칭·정렬 강박이다. 물건을 반드시 제자리에 놓고 배열 상태를 정돈하는 유형이다. 가구나 소품 등이 자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대칭을 이루지 못하고 정리돼 있지 않다는 강박사고가 작용한다. 이를 다시 조정하기 위해 물건을 가지런히 놓아야 비로소 안심한다.

넷째는 저장 강박이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쌓아두는 상태다. 귀한 물건을 수집하기보단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불필요한 물건까지 모으며 낡은 물건에 집착한다.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잡동사니나 쓰레기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반복적으로 숫자를 세거나 공격적인 충동과 성적 생각을 되풀이하는 행동도 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지원 교수는 “지속적이고 불쾌하게 침습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강박사고”라며 “강박장애를 겪으면 불안감과 심리적 고통을 느낄 뿐만 아니라 강박 행동과 관련한 의식적 행동을 자주 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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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세척 강박: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계속 세척하려는 강박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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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강박: 자신이 한 행위를 끊임 없이 의심하면서 확인 하려는 강박 행동


중앙일보

저장 강박: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버리지 못해 수집하려는 강박 행동


중앙일보

대칭·정렬 강박: 어질러진 물건을 제자리로 배열을 맞추려는 강박 행복






강박 성향 있어도 다 강박장애는 아냐



강박사고와 강박 행동을 한다고 모두 강박장애로 진단되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강박 증상이 있을 수 있다. 현대인 중에서도 강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여행을 가서 문단속을 잘했는지 걱정하는 A씨, 파일을 제대로 첨부했는지 수시로 확인한 뒤 거래처에 e메일을 보내는 B씨, 주방 집기류를 각 잡아 깔끔하게 정리하는 C씨가 그렇다. 오히려 이러한 성향은 실수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강박장애는 강박사고나 강박 행동으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강박적인 생각이 일이나 관계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을 주고, 강박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샤워를 하거나 내용을 계속 확인하고 물건을 정리하려 노력하다가 시간 약속을 못 지키기 일쑤다. 자연스럽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업무 수행능력도 떨어진다. 한 교수는 “강박 행동을 위해 적어도 하루 1시간 이상을 소모하며 생활 전반에 상당한 지장을 줄 때 강박장애로 진단한다”며 “강박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 치료 여부에 대한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박장애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생물학적인 원인과 심리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가 강박장애를 갖고 있으면 자녀도 강박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불균형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한 교수는 “뇌 부위들의 기능적 이상이 강박장애를 야기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며 “강박 행동이 강박사고로 인한 불안을 다소 줄여준다는 점을 학습하면서 강박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강박장애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이 교수는 “강박장애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최선이다”며 “약물치료로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인지행동치료는 불안에 대한 내성을 기르도록 돕는다. 환자가 두려워하는 상황이나 자극을 노출해 강박 행동을 억제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뤄진다.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적이다. 강박장애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박장애 증상이 심해지면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양극성 장애를 동반할 수도 있다. 이는 자살 시도 등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증상이 있다면 곧바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강박 증상이 생겼을 땐 평소 강박장애를 누그러뜨릴 생각을 하면서 증상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관리는 필수다. 일시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도 강박사고가 생겨날 수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강박 증상이 악화하지 않도록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게 좋다. 적정 강도의 유산소 운동과 명상은 질환 극복에 도움되는 습관이다. 당장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서 이완 요법과 복식호흡을 꾸준히 연습하면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강박장애의 대표적 증상

▶사람·사물과 접촉할 때 병균에 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외출할 때 문이나 가스 불을 안 잠그고 나왔나 의심한다

▶물건이 어지럽혀 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기 힘들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손을 자주 씻고 샤워를 오래 한다

▶불필요한 물건이더라도 쓸모가 있을 듯해 버리기 어렵다

▶전등을 끄거나 수도를 잠갔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반복적으로 숫자를 세거나 물건을 정렬한다.

※ 강박 증상 극복하려면

①두려운 대상을 피하지 않고 불안감이 들더라도 강박 행동을 참아본다

②불안감을 참기 어려울 땐 운동·음악감상 등으로 주위 신경을 돌린다

③우려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지 계산해 본다

④반복적으로 드는 강박적 사고를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한다

⑤강박사고를 종이에 쓰거나 녹음해 다시 보고 들어본다

⑥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이나 명상, 복식호흡 등 이완요법을 한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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