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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슈 천태만상 가짜뉴스

“가짜뉴스에 상인만 죽어나… 정치권이 과학적 정보 알려야” [日 오염수 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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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노량진 수산시장 가보니

인파 북적이던 시장, 상인 더 많아

“하루 2~3팀 받기도 어려워” 한숨

손님 “앞으론 회 먹기 꺼려질 것”

“원전 사고 때도 문제 없었는데…

겁먹기보단 차분히 대처” 목소리

매출 모니터링 뒤 대책 촉구 방침

“버티기 힘들다.” “죽어날 판이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방류한 24일 전국 수산물시장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드물게 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생선을 덜 먹거나 안 먹게 될 것 같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이날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건물 외벽에는 상인들의 절박한 외침인 냥 ‘우리 수산물 안전 이상 없다! 안심하고 소비합시다!’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상인들은 정치권이 과학에 기반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을 안심시키기보다 불안을 조장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부산을 넘어 전국을 대표하는 수산물시장으로 평소 인파로 북적이던 자갈치시장은 활기를 찾기 어려웠다. 이날 오전 10∼12시 자갈치시장과 인근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 일대를 돌아보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매장은 썰렁했다.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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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시장엔 한숨만 가득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24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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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시간 자갈치시장을 찾은 손님은 총 6팀에 불과했다. 이 중 한 팀은 칠레 관광객이고, 나머지 5팀만 내국인이었다. 친구 부부와 자갈치시장을 찾은 서경애(67)씨는 “아무래도 수산물 구매를 줄이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식단을 준비해야 될지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오늘까지만 회를 먹고, 내일부터는 생선을 일절 먹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난 시민 이모(57)씨는 “국내산은 안전할 거라고 하지만 오염수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확언할 수 없는 만큼 불안한 게 사실”이라며 “오염수가 국내 바다에 유입되기 전에 젓갈류 등 미리 사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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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 인근 한 회센터에서 상인들이 오염수 방류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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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영업 준비로 바빠야 할 상인들은 대부분 일손을 놓은 상태였다. 자갈치시장 주변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꼼장어가게들은 일절 일본산 수산물을 취급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렸다. 자갈치시장에서 40년째 꼼장어 장사를 해온 송용주(63)씨는 “지난 3년간 코로나19에다 최근 단가 상승으로 힘든데,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까지 겹치면서 솔직히 버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인근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40년 가까이 활어장사를 한 박동규(64)씨는 “3개월 전부터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뉴스에 손님이 하나둘 줄더니 어느 순간 절반 이상 줄었다”며 “정치인들이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 보도하는 행태가 지속되면서 상인들만 죽어날 판”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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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한 시민이 횟집을 지나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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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죽도시장, 경남 창원 마산어시장, 제주 동문수산시장 등 다른 지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인들의 불만은 정치권으로 향했다.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 한 활어가게의 김영순(72) 대표는 “‘가짜뉴스’ 때문에 죽어나는 것은 상인들”이라며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는 이미 결정된 것이고, ‘안심하고 먹어라’고 해도 부족할 판에 정치인들이 나서서 ‘(수산물을) 먹지 말라’고 부추기면서 국민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꼼장어가게 송용주씨도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다고 곧바로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정치인이나 언론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고 질타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난 상인들도 소비 침체를 걱정하며 정치권과 언론이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건어물을 판매하는 김모(63)씨는 “솔직히 말해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아무 문제 없이 잘 먹었는데 지금 오염수 방류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회는 수산시장 내 점포 10곳을 선정해 매출 추이를 살피고 수산물 소비 촉진 행사를 개최하는 등 오염수 방류 여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차덕호 상인회장은 “매출을 모니터링해 정말 장사가 안 되면 정부나 수협중앙회에 대책 마련을 촉구할 방침”이라며 “상인들도 오염수가 방류되지 않길 간절히 바랐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겁먹기보단 차분하게 대처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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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24일 제주시 용두암 인근 해안에서 수산물을 파는 해녀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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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명지시장의 전어축제추진위원회 천동식 회장은 “방류한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해역에 도착하는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 수년을 거쳐 우리 바다에 온 오염수의 상태는 어떨지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불필요한 의혹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상인들 사이에선 실제 매출이 많이 감소하진 않았다는 희망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노량진수산시장 차 상인회장은 “경제가 어려운 것도 있고 원래 7, 8월이 수산물 소비 비수기”라며 “곧 차례상에 문어나 젓갈이 올라가는 추석이 다가오니 관건은 그때부터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통영중앙시장을 찾은 한 시민은 “정치권에서 불안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방류가 시작돼 수산물을 먹는데 찝찝하기야 하겠지만,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결과가 있지 않냐”고 했다.

부산=오성택 기자, 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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