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2019년 9월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투자금을 환매 받은 이들이 특혜를 받았다고 판단했지만,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분석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들의 환매 두 달 전부터 라임자산운용이 곪았다는 걸 인지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8~9월은 상당수 투자자가 라임자산운용 부실을 확인하고 중도환매하던 상황이었다. 특혜 환매 논란의 중심에 선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9년 9월 판매사인 미래에셋증권의 권유에 따라 환매를 신청했다’고 주장하는데, 납득할 만한 설명이라는 평가가 많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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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2019년 7~8월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수익률 돌려막기와 관련해 검사에 착수했다. 해당 운용사가 증권사의 계좌를 이용해 파킹(채권의 실제 소유주가 소유 사실을 감추고 다른 금융사에 채권을 맡기는 것)으로 한계기업의 전환사채(CB)에 초과 투자하면서 부실을 돌려막고 있다는 게 핵심 의혹이었다. 이와 관련해선 조선비즈를 비롯한 일부 언론사가 보도한 바 있어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는 라임자산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연관기사 [단독] 라임자산운용,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로 검찰 조사<2019.07.08>
미래에셋증권이 라임마티니4호의 투자자들에게 전원 환매를 신청하라고 한 것도 이 배경이다. 라임마티니4호는 김 의원이 2억원을 투자했다가 2019년 9월까지 총 1억6400만원을 돌려받은 펀드로, 금감원이 지목한 특혜성 환매 펀드 중 하나다. 김 의원에 따르면 라임마티니4호는 언제든지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국내 주식 펀드였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시장 소문이 안 좋은 데다가 기준가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며 “개방형 펀드라 환매가 가능한 상태여서 환매를 일괄적으로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감원은 라임자산운용이 대규모 환매를 중단하기 직전인 2019년 8~9월 4개의 펀드에서 투자 자산의 부실과 유동성 부족으로 환매 대응 자금이 부족해지자 다른 펀드 자금과 운용사의 고유 자금으로 일부 투자자에게 특혜성 환매를 해줬다고 발표했다. 이후 언론 보도로 4개의 펀드 중 하나는 라임마티니4호이며, 일부 투자자 중 1명은 김 의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금감원이 이를 특혜라고 한 이유는 4개의 펀드 수익자를 위해 펀드를 돌려막았고 운용사가 이 펀드의 손실을 다른 펀드의 투자자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다.
24일 발표된 금융감독원의 보도자료 '「주요 투자자 피해 운용사 검사 TF」검사 결과' 중 일부/금융감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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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특혜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김 의원이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특혜성 환매를 받았다면 ▲김 의원만 이례적으로 환매를 받았거나 ▲김 의원이 운용사로부터 곧 대규모 환매 중단이 터질 것이라는 언질을 미리 듣고 미래에셋증권에 환매를 요청했어야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의 환매는 2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김 의원 외에도 미래에셋증권을 통해 라임마티니4호 등에 가입한 투자자 16명은 모두 환매를 받았으며, 환매 역시 김 의원이 아닌 시장에서 라임자산운용의 삐걱거림을 포착한 미래에셋증권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보도자료에 기재한 환매 금액도 사실과 다르다. 금감원은 지난 24일 보도자료에서 다선의 국회의원이 2억원을 환매받았다고 기재했지만, 2019년 9월 김 의원이 환매받은 돈은 1억5600만원이다. 그해 6월 먼저 환매받은 800만원과 합쳐도 총 1억6400만원에 그친다.
김 의원이 ‘의원’이라는 위력을 행사해 특혜를 받았다고 못 박으려면 환매 전에 라임자산운용 측이 내부 정보를 김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정황이 있어야 한다. 금감원은 27일 일요일 저녁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면서도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해당 보도자료를 통해 “자체 자금으로 환매가 불가능함에도 다른 펀드자금 또는 고유자금을 투입해 환매에 응한 부분은 특혜가 제공된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2019년 10월 당시에도 펀드 간 손실 전가는 심각한 불건전 운용 문제로 인식됐었다. 당시 금감원이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를 중단시킨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라임이 펀드 기준가만큼의 자산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펀드 런’을 하는 투자자가 유리했던 상황이다. 김 의원과 다른 투자자들은 판매사의 빠른 대처로 상대적으로 손실을 줄였을 뿐이다. 만약 금감원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면, 당시 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이복현 금감원장은 백혜련 정무위원장과 김 의원의 요청으로 25일 오전 김 의원실을 방문했다. 이 원장과 면담 후 김 의원은 “이 원장이 다섯 차례 ‘여러모로 죄송하다’고 했다”며 “이 원장은 김 의원이 특혜성 환매 과정에 개입한 증거는 발견된 바 없다고 밝히기로 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금감원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은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과나 유감을 표명한 사실은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이 이 원장과의 면담 녹취록을 갖고 있는 만큼 이를 공개하면 진실 공방이 명확해진다. 하지만 김 의원은 현재까지 이를 공개하진 않고 있다. 김 의원 측은 녹취록 공개와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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