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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스토킹 파격조치' 장담한 한동훈, 이후 1년 "대체 뭐가 바뀌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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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스토킹 범죄에 대해) 신당역 사건 이전과 이후로 분명히 나눌 수 있다고 나중에 말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조치를 준비하겠다."

지난해 9월,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 직후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2022년 9월 14일 여성 역무원이 근무 중 스토킹 가해자에게 살해당한 해당 사건은 14일로 정확하게 1년을 맞았다. 한 장관의 장담처럼 스토킹 범죄 대응엔 '파격적인 조치'가 실현됐을까.

신당역 사건이 1주기를 맞은 이날 여성계에선 "(한 장관의) 발언이 무색하게, 1년이 지난 지금도 스토킹으로 인한 여성살해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신당역 사건 이전과 이후, 도대체 무엇이 나뉜단 말인가" 꼬집었다.

실제로 스토킹 가해자에 의해, 그것도 피해자 신변보호조치 중에 일어난 여성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들은 신당역 사건 이후로도 줄을 잇고 있다. (관련기사 ☞ 신당역 여성살해 1년, 지하철도 스토킹도 바뀐 건 없었다)

신당역 사건이 일어난 지 채 한 달이 되기 전인 지난해 10월 대전에선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남편이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피해자에게 접근한 끝에 그를 살해했다. 당시 가해자는 살인을 저지르기 이전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왔지만, 경찰은 직권으로 명령이 가능한 퇴거조치를 실행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법원에 직접 퇴거신청서를 낸 뒤 가해자에게 살해당했다.

다시 한 달여 뒤인 지난해 11월 대구에선 역시 스토킹 신고로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한 남성이 외려 스토킹 신고 사실을 빌미로 피해자와 피해자의 8세 아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의 아들이 사망했고, 피해자 또한 가해자에게 납치돼 감금·폭행 및 강간미수 등의 범죄를 당했다. 스토킹 피해의 대표적 사례인 보복성 주변인 살해였다.

스토킹처벌법 강화 등 정부의 입법대책이 마련된 뒤인 올해 7월에도 스토킹 살해는 계속됐다. 지난 7월 인천에서 일어난 일명 '인천 스토킹 살해' 사건은 피해자의 사촌언니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사건을 공론화하며 최근에도 대중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피해자는 스마트워치까지 지급받았으나 해당 장비를 반납 후 출근길 자신의 자택 앞에서 살해당했다.

해당 사건에서도 가해자는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심지어 가해자가 피해자의 직장 동료였으며, 직장이 동일하다는 점을 이용해 공공연한 '직장 내 스토킹' 행위를 지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사업장은 이 범죄에 대해 인지도 대처도 하지 못했다. 결국 가해자는 피해자를 죽이고, 이를 만류하던 피해자의 어머니에게까지 상해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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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신당역 살인사건 발생 후 마련된 서울지하철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 추모공간에 '더 이상 죽이지마라'라는 문구를 담은 추모 메시지가 붙어있다. ⓒ프레시안(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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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피해자 보호? "국가가 피해자에게 보호 책임 전가한다"

접근금지명령, 잠정조치 등 현행 스토킹 피해자 신변보호 장치에도 불구하고 스토킹 살해사건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수사·사법기관이 살인 등 중범죄로 쉽게 이어지는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피해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신당역 사건 당시 경찰은 '지난해(2021년) 10월 피해자의 신변보호 신청으로 1개월간의 신변보호가 이뤄졌으며, 피해자의 요청으로 조치가 종료됐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원치 않아 피해자 보호에 난항이 있었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라는 이유로 2021년 10월 당시 현행범으로 체포된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보호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제도적 원칙은 당시에도 지금도 없다. 검찰과 법원은 서면경고부터 신변구속에까지 달하는 '잠정조치'를 직권으로 명령할 수도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당시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신당역 사건의 경우 불법촬영 및 협박 등 혐의로 구속영장까지 신청된 사건이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수사·사법기관이) 그러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당역 이후 정부와 국회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하고 스토킹피해자보호법을 신설하는 등 나름의 제도보완에 나섰지만, 신당역 사건 당시와 비슷한 일은 이번 인천 스토킹 살해사건에서도 되풀이됐다.

인천 스토킹 살해사건을 공론화한 유가족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는 사건발생 한 달가량 전에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고 이후 한 달 동안 가해자의 접근을 느끼지 못해 상황이 다소 호전됐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가해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면 스마트워치를 반납해 달라'고 피해자에게 안내했고, 피해자는 7월 13일 스마트워치를 반납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그날부터 17일까지 5일간 피해자의 자택 앞에 대기했고, 17일 피해자를 살해했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스마트워치 논란이 일자, 경찰은 '피해자가 자진 반납한 것'이라 해명했다. '피해자가 원치 않아서' 보호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신당역' 당시의 해명과 그 결이 같은 모양새다. 여성의전화는 이날 성명에서 "신당역 사건과 마찬가지로, 본 사건에서도 피해자 보호를 위해 '모든' 조치를 취했어야 할 책임 주체인 국가가 도리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며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장관이 장담한 '입법개혁'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법 개정은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과연 이런 변화들이 실질적으로 스토킹 피해자들에게 와 닿을지에 대해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직장갑질119 젠더폭력대응팀에서 활동 중인 강은희 변호사는 지난 11일 신당역 1주기 추모 기자회견 현장을 찾아 "법 개정으로 스토킹처벌법의 스토킹 행위 유형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스토킹이 추가됐지만, 법은 여전히 스토킹 행위를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다"며 "새로운 유형의 스토킹에 법은 언제나 취약하다. 스토킹 처벌법의 스토킹 정의 규정을 스토킹 행위의 본질에 맞게 포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신설 등 피해자보호대책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잠정조치는 최장 9개월까지만 가능하여 여전히 피해자를 보호하기에는 부족하다"라며 "무엇보다 법은 여전히 잠정조치에 대한 피해자의 직접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검사를 통한 청구권만을 인정해 여전히 피해자 신변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스토킹피해자보호법은 지자체에 스토킹 지원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 변호사는 이에 대해서도 "7월 말을 기준으로 장기와 단기 전용 시설을 갖춘 지자체는 부산과 전남 두 곳뿐"이라며 "아직 충분한 보안을 제공하는 피해자 전용 시설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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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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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보복하지 못하도록 엄벌" 신당역 피해자의 외침, 법원은 바뀌지 않았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성명에서 "인천 스토킹 여성살해 사건에서 보다시피 스토킹 범죄에 있어 1건의 잠정조치 위반은 1명의 스토킹 피해자의 안전과 목숨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그러나 사법부는 그만한 위험성을 인지하고, 그에 합당한 처분을 하고 있는가" 묻기도 했다.

경찰, 검찰 등의 미흡한 '피해자 보호조치'에 더해, 사법부 또한 스토킹 범죄를 안이하게 판단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구속, 징역 등 실질적 격리를 피한 가해자는 당연히 더 쉽게, 그리고 더 빠르게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단체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의 스토킹처벌법위반 단일 범죄 중 잠정조치 불이행죄로 재판을 받은 64건에 대해서 징역형 실형이 선고된 것은 15.6%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집행유예와 벌금형 등의 형이 선고됐다"라며 "접근하지 말라는 법원의 명령에 불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함으로써 불이행죄를 관대하게 취급하여, 사실상 추가 범죄가 발생할 빌미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법원 선고가 '오히려 재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은 신당역 이전부터 이어져온 지적이다. 용혜인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7개월여간 접수된 신고 건수는 시행 이전 3년 4개월간에 비해 47.9% 증가했지만, 검거된 스토킹 피의자 중 구속율은 3.6%에 그쳤고, 실형이 선고된 1심 판결은 63건, 선고된 평균 형량은 13.4개월에 불과했다

현재 이번 인천 스토킹 살해 피해자의 유가족들도 "(검찰이) 엄연한 보복살인임에도, 가해자의 진술에만 따라 형량이 낮은 살인으로 기소"했다며 재판부에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피해자의 사촌언니 A씨 이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한 공론화 글에서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금 9월 첫 재판을 앞두고 보복살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라며 "(보복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가해자는 제 동생을 죽인건가" 울분을 토했다. 그는 '제발 피해자의 딸이라도 안전하게 해달라'라며 가해자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유족의 법률 대리인 민고은 변호사는 인천 스토킹 살해사건 관련 엄벌촉구 탄원서에서 "현행 피해자 보호조치로 피해자가 끝내 사망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스토킹 살해 사건의 방지책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년 전, 신당역 살인사건의 피해자 또한 스토킹 등 가해자의 이전 범죄로 이미 재판을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피해자는 생전 법원에 제출한 마지막 탄원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피고인이 저에게 절대 보복하지 못하도록 엄중한 처벌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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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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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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