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야 할 가계부채 사상 최대
2030 빚더미에 출산율도 저하
고금리 속 상승한계, 총선 변수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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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다시 전국적으로 들썩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이후 하락세가 이어졌던 전국 주택(아파트 연립 단독) 가격이 지난 7월 상승(0.03%) 반전한 데 이어 3개월 연속 오름폭을 확대(8월 0.16%, 9월 0.25%)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서 한 시민이 매물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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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던 전국 주택 가격이 지난 7월 상승 반전(0.03%)한 데 이어 3개월 연속 오름폭을 확대(8월 0.16%, 9월 0.25%)하고 있다. 지난달 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에서도 전국 아파트 가격은 15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하며 거래 절벽으로 찬바람만 불던 1년여 전 부동산 시장과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국적인 집값 상승을 견인한 건 서울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이미 5개월째 오름세다. 직전 최고가의 90%까지 회복한 단지도 적잖다. 한강변 신축 단지와 재건축 사업이 가시화한 곳에선 신고가도 나온다. 반포 래미안원베일리아파트 전용 84㎡는 43억 원을 찍었다.
거래량도 회복세다. 지난해 10월 559건까지 추락했던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건수는 8월 3,897건까지 올라섰다. 2020년 6월 1만5,622건과 비교할 순 없지만 최악은 지났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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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순 이후 내림세가 이어졌던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이 15개월 만에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KB부동산의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9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09% 올랐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하락세를 지속하다 흐름이 바뀐 것이다. 사진은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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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주택 공급 물량이 급감할 것이란 전망도 이런 매수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8월까지 인허가 물량은 21만여 호로, 전년 동기 대비 40%나 줄었다. 착공은 11만여 호로, 반토막도 안 되는 수준이다. 주택 인허가 후 착공과 준공, 입주까지 통상 2~4년이 걸리는 걸 감안하면 새 아파트의 희소가치는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 가구도 안 될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규모다. 일각에선 2027년까지 신축 아파트 물량 가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월급 빼고 모든 게 오르면서 아파트 역시 ‘오늘이 제일 싸다’는 인식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경기 광명시의 전용 84㎡ 분양가가 12억 원이 넘는 논란에도 1순위 청약에서 모두 마감된 건 향후 고분양가를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집값 회복세는 원인을 좀 더 분석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집값이 소득 대비 너무 높은 수준인 데다가 금리가 상승하는 데도 아파트 가격이 반등한 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적잖다.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율(PIR)은 26~30배로, 주요 80개국 중위값(11배)보다 훨씬 높다. 다른 나라에선 가처분 소득으로 중소형 아파트를 사는 데 10여 년이 걸리지만, 우린 30년 가까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끝나고 각국 중앙은행이 유동성 축소에 나서면서 대부분 국가의 부동산 가격도 조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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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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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나라 집값이 오른 건 사실상 정부가 빚을 내 집 살 것을 권하는 대출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정부는 올 들어 특례보금자리론을 40조 원 가까이 공급했다. 9억 원 이하 주택 구매자에겐 연 4% 안팎 금리로 최장 50년간 최대 5억 원을 대출해 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은 2030 젊은 층의 영끌 매수세를 촉발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안 받는다. 업계에선 올해 전체 주택 매매 거래량 중 3분의 1 이상이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 자금조달계획서 기준 연령별 주택 매입 비중은 2030 청년층이 33.1%로, 40대(32.5%)나 50대(19.9%)보다도 높았다. 8월 청약 당첨자 중 30대 이하가 차지한 비율은 55%에 달했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우려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이 2030의 빚투에 불을 지르며 집값이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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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훈 강원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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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연구학회장을 지낸 이현훈 강원대 교수는 “2030이 집을 살 수 있게 대출을 해주는 나라가 어디 있나”라며 “2030은 원래 저축한 돈도 적고 소득도 낮아 집을 사면 안 되고 못 사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실 올해 초는 ‘미친 집값’을 잡고 하향 안정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정부는 오히려 2030을 끌어들여 집값을 떠받치는 ‘거꾸로 정책’을 폈다”며 “장기적으로는 인구도 줄고 소득도 감소하는 데다 유동성 잔치를 계속할 수도 없는데 단기적으로 대출을 통해 집값을 올린 그야말로 '억지'이자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토연구원도 집값은 금리(60%)와 대출 규제(18%)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보고서를 올해 초 발표한 바 있다. 사실상 금리와 대출이 집값의 움직임을 좌우하고, 주택 공급과 인구 구조 등의 영향은 작다는 얘기다. 결국 고금리 상황에도 집값이 오른 건 정부가 대출을 푼 게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줄어야 할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총액이 오히려 더 늘었다는 데 있다. 분기별로 가계신용(빚) 통계를 발표하는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은 1,863조 원에 달했다. 이후 금융위원회가 7~9월 매달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 자료를 참고해 3분기 말 가계신용을 추정하면 이미 1,877조 원을 넘었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3분기(1,871조 원) 기록까지 경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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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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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보다 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과도하게 높다. 글로벌데이터제공업체 CEIC에 따르면, 6월 기준 각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호주가 116%으로 가장 높고 한국이 104%로 2위다. 67%인 일본, 65%인 미국은 물론 63%인 중국보다도 많다. 가계부채는 통상 GDP의 80% 수준을 넘으면 위험하다는 게 국제 가이드라인이다. 이 교수는 “중국 출산율이 우리보다 높고 고령인구 비율은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보다 더 위험한 게 사실 한국 부동산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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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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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2030 젊은 층에 집중돼 있는 데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5대 은행과 6대 증권사의 담보 및 신용대출과 주식 융자 신규 취급액 478조 원 가운데 2030 부채 비중은 134조 원에 달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가계대출 차주의 빚은 소득의 3배나 됐다. 상환 능력을 초과한 부채는 가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부채가 너무 커 소득의 대부분을 원리금 상환에 써버리면 다른 데 쓸 돈은 남지 않게 된다. 전체적으로 소비가 줄면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 일본식 장기 침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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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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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로 더 이상 인구 보너스를 기대할 수 없고,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도 한계에 도달했는데 가계부채까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게 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며 “통계상 가계부채는 2,000조 원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인 전세 보증금(1,058조 원)과 가계대출 성격이 강한 자영업자 소상공인 대출(1,034조 원)까지 합치면 사실상의 가계부채는 4,000조 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집값과 부채는 출산율도 떨어뜨리고 있다. 이 교수는 “1985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의 주택 가격과 합계 출산율을 분석한 결과, 단순상관관계가 마이너스 0.86, 서울 집값과 출생아 수는 마이너스 0.91로, 주택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 그만큼 아이를 덜 낳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특히 주택 가격이 급등한 2001~2004년과 2018~2021년 출산율이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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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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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2030에게도 집을 살 권리는 있다. 다만 이는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거나 부유한 부모를 둔 2030에게 국한되기 십상이다. 채상욱 유튜브 채부심 대표는 “주택 매수에서 2030 비중이 높다는 건 그만큼 빚을 많이 냈거나 사실상 주택 매수 과정에서 가족 간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다른 나라에선 2030 대출 확대보다 2030을 위한 공공임대주택공급 등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 대표는 “집값은 결국 대출에 달렸다”며 “정부가 2030을 위한 분양 물량 공급과 대출에만 힘을 쓰면 집값은 올라갈 수 있겠지만 시장의 왜곡과 자산 양극화만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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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욱 유튜브 채부심 대표. |
과도한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이는 없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 모두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집을 사고 싶은데 정부가 대출을 막는다면 이를 좋아할 유권자는 없다. 적어도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폭탄 돌리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집값 상승세를 불러온 대출 확대도 내년 4월 총선까진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총선이 끝나면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가계 부채가 이미 임계치를 넘은 상황에서 전쟁이나 유가, 세계적인 경기 침체 등 예기치 못했던 대외 충격까지 겹친다면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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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가운데)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26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마친 후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추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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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들썩이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는 또다시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질적 공급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공급을 오히려 막는 결과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6일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에서 12만 호 수준의 물량을 추가 확보하고 민간의 적체된 인허가 및 착공 대기 물량이 조기에 재개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발표된 270만 호 공급 계획조차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12만 호를 늘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인허가를 받고도 착공을 못하는 건 그만큼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인 만큼 속도가 붙는 데도 한계가 있다. 지원이 가능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도 전체의 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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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하나감정평가법인 이사(유튜브 박감사리얼아이). |
박은정 하나감정평가법인 이사(유튜브 박감사리얼아이)는 “시장에서 자연스레 정리돼야 할 악성 사업장이 공매로 나오거나 주인이 바뀌어야 실질적 공급도 기대할 수 있다“며 “정부의 PF 보증 확대는 결국 부실 사업장을 더 연명시켜 길게 보면 새로운 공급만 더 막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이사는 “부동산 시장은 올해 초까지 나타났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 과정이 특례보금자리론과 둔촌주공살리기 등 정부의 인위적인 금융 공급과 강제적인 부양으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인들은 금리와 부채를 우습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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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의 이코노픽. |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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