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대·강남 '고밀도 위험 골목길', 핼러윈 인파 비상
핼러윈 데이를 일주일 앞둔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 술집 등은 핼러윈 데이를 맞아 호박 모형과 가랜드 등을 걸어 놓았다. /황지향 기자 |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흘렀다. 책임자 처벌과 촘촘한 사회 안전망 구축, 사고 방지 대책 마련 등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사회 곳곳에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유가족,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좁은 골목 등 여전한 사각지대가 목격된다. 더팩트는 참사 1년을 맞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유족들을 재조명하고, 사고 위험에 노출돼있는 상습 혼잡지역을 점검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조소현, 황지향 기자] 핼러윈을 이틀 앞둔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12 바닥에 '경사로 주의'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경사진 골목에 들어서자 술집 한두 곳이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사 약 4.6도로 가파르진 않았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몸이 기울어졌다.
양쪽에는 2~3층짜리 건물들이 서 있어 폭 3m에 불과한 골목이 더욱 좁게 느껴졌다. 사람이 몰리면 몸을 피할 만한 공간도 없었다. 골목 끝에는 지름 10㎝ 이상 크기의 홈이 파여 있어 발을 헛디디기 십상이었다. 50m 정도 길이의 골목을 빠져나오자 양옆으로 또 다른 술집과 클럽 등이 늘어서 있었다.
서울 마포구 홍대 포차골목 아래쪽에 홈이 파여 물과 쓰레기 등이 고여있다. /황지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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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목길은 일명 '홍대 포차골목'. 주말이면 항상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서울경찰청은 올해 핼러윈 기간을 앞두고 포차골목을 포함한 '고밀도 위험 골목길' 16곳을 선정했다. 경찰은 지형과 경사로, 도로 폭에 따라 고밀도 위험 골목길의 등급을 A(심각·1㎡당 5명), B(경계·1㎡당 4명), C(주의·1㎡당 3명) 등 3개 등급으로 세분화했다. 포차골목은 A등급에 해당한다.
경찰은 지난해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던 만큼 올해는 홍대와 강남에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대로 포차골목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자 유령, 좀비 인형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과 술집이 눈에 띄었다. 박쥐 스티커, 마녀 인형, 형형색색의 호박 모형 등이 핼러윈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홍대에서 클럽과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주말이면 클럽 앞에 줄을 길게 선다"며 "사람이 몰리면 금새 혼잡해져 직원 7명 정도가 나와서 인파 관리를 한다. 핼러윈 때도 비슷하게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 '곱창골목'에 진열대가 세워져 있다. 경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도로 위 사람들이 걷고 있다. /황지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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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B등급으로 점찍은 클럽거리골목과 곱창골목도 상황은 비슷했다. 경사와 평지가 반복되는 곱창골목에는 입간판과 진열대 등이 어수선했다. 진열대가 세워진 곳의 폭은 2.8m에 불과했다. 클럽거리골목은 폭 3.8m로 비교적 여유로웠으나 일방통행 거리 곳곳에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인근에서 콘택트렌즈 전문점을 운영하는 상인 B씨는 "주말에도 항상 사람이 많은 곳이라 퇴근할 때면 겨우겨우 비집고 나가야 하는 정도"라며 "작년 핼러윈 때도 사람이 많이 왔었다"고 말했다.
붕어빵을 판매하는 C씨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골목길이 좁은데 양쪽이 (상가들로) 막혀 있어 식당에 줄을 서거나 인파가 몰리면 위험성이 더 커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특히 경사가 계속 이어지는 게 이태원 참사가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B등급으로 선정된 홍대 '곱창골목' 초입에 '교통통제안내' 현수막이 붙어있다. 골목 양쪽은 상가들로 빼곡하다. /황지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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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홍대와 달리 A등급으로 지정된 골목길은 없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폭이 좁아 대규모 인파가 운집할 경우 사고가 우려됐다. 경찰은 강남의 경우 총 7곳을 고밀도 위험 골목길로 정했다.
강남대로 408 영풍문고 옆 샛길은 고밀도 위험 골목길 중 유일한 계단형 골목길로 경찰이 B등급으로 지정했다. 폭은 3m지만 계단 양쪽에 설치된 손잡이로 실제로는 더 좁았다. 손잡이 설치를 위해 세워진 지지대 사이 거리는 고작 1.6m에 불과했다. 골목을 지나던 성인 남성 세 명은 나란히 지나가다 어깨가 부딪혔다.
계단도 낡고 높았다. 높이가 약 15㎝에 달해 발을 조금만 헛딛어도 넘어질 위험성이 높아 보였다. 가파른 경사로 사람이 몰렸을 때 누군가 한 명이 넘어지면 연달아 넘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강남 '영풍문고 옆 샛길'. 경찰이 선정한 고밀집 위험 골목길 중 유일하게 계단형 골목길으로, 경찰은 이 골목길을 B등급으로 지정했다. /조소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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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이 골목을 자주 다닌다는 회사원 조모(27) 씨는 "(강남역) 11번 출구와 가깝고 (골목길을 지나면) 음식점과 카페 등이 많아 많이 이용한다"며 "평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이태원 참사 때처럼 사람이 몰리면 계단이 너무 높아 무서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임모(31) 씨도 "계단 경사가 가팔라서 위험해 보인다"며 "사람이 오다가다 부딪히기 쉬울 것 같다"고 우려했다.
마포구청과 강남구청은 27일부터 31일까지 인파 밀집이 우려되는 지점을 점검할 계획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경찰·소방·구청 합동본부를 차려 3000명 정도의 인력이 5일간 위험 구간을 관리할 예정"이라며 "오후 7시부터 오전 3시까지 하루에 600명씩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sohyun@tf.co.kr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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