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치료 내성 생기면 암 전이
여성암 치료 표적항암제 적용 땐
질병 진행 위험 78% 감소 효과
국내 남성암 3위인 전립샘암은 인구 고령화로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질환이다.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1만6000여 명 이상이 새롭게 전립샘암으로 진단받는다. 폐암·위암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전립샘암은 조기 발견하면 10명 중 9명이 5년 이상 생존한다. 10년 생존율도 92.3%로 높다. 생존율이 높아 순한 암으로 보이지만 암세포가 전이된 순간 돌변한다.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호르몬 치료에 더는 반응하지 않는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mCRPC)으로 진행하면서 예후가 불량해진다. 최근엔 전립샘암 치료에 효과적인 표적 유전자가 확인되면서 전립샘암 정밀 의료가 실현되고 있다. 국립암센터 비뇨의학과 정재영 교수에게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의 최신 표적 치료법에 대해 들었다.
국립암센터 정재영 교수는 “표적항암제로 예후가 불량한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의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하 객원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은 왜 예후가 나쁜가.
“호르몬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독한 암세포만 살아남아서다. 전립샘암 환자의 85%는 전이가 없는 국소 병변일 때 진단받는다. 일반적으로 암이 다른 부위에 퍼지지 않는 비전이 상태의 전립샘암은 암 증식에 영향을 주는 테스토스테론 등 남성호르몬 분비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바로 호르몬 치료다. 그런데 치료 시작 후 1~3년 정도 지나면 호르몬 치료에 내성을 보이는 암세포가 우세해지면서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으로 진행한다. 생존율이 높아 순해 보이는 전립샘암이 돌변한 순간이다.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은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기존 전립샘암 치료법으로는 더는 암 증식을 막지 못하는 상태다. 암세포가 다시 증식하면서 전립샘암을 가늠하는 종양 표지자인 PSA 수치도 높아진다. 호르몬 치료로 뚝 떨어졌던 PSA 수치가 상승하면 생화학적으로 전립샘암 전이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부작용이 심한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해도 기대만큼 치료 성적이 좋지 않다. 전립샘암이 전이된 상태에서의 5년 상대 생존율은 초기 전립샘암과 비교해 절반가량 낮은 45%에 불과하다.”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전이성 전립샘암 진행 위험이 높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유방암·난소암 유전자로 유명한 BRCA 유전자 변이다. BRCA 유전자는 세포의 DNA 복구를 돕는 역할을 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BRCA 변이가 있으면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복구하는 힘이 떨어진다. BRCA2 변이가 있는 경우엔 전립샘암 발생 위험이 최대 8.6배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예후가 불량한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의 27%는 BRCA 변이를 포함한 상동 재조합 복구 유전자(HRR) 변이도 확인됐다. BRCA 변이가 있는 암 환자는 전이가 잘 나타나고, 재발 시 치료 반응 기간이 짧은 편이다.”
-BRCA 유전자 등을 타깃으로 한 표적 치료제로 전립샘암도 치료할 수 있지 않나.
“전립샘암 치료에서 최근 주목하는 부분이다. 암 치료 분야 정밀 의료가 발전하면서 주로 여성암 치료에 쓰였던 표적항암제를 같은 표적을 공유하는 남성암인 전립샘암 치료에도 쓴다. BRCA·HRR 변이가 있는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 환자에게서 DNA 복구를 돕는 효소인 파프(PARP)의 활동을 차단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표적항암제(린파자)로 치료 가능하다. 호르몬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BRCA 변이가 있는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 환자에게 기존 치료법에 표적항암제를 병용했더니 질병 진행 위험을 78%나 감소시켰다. 방사선학적 무진행 생존 기간(rPFS) 중앙값도 9.8개월로 기존 항암 치료(3.0개월)와 비교해 3배 이상 늘렸다.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은 호르몬 치료로 극악한 환경을 견딘 독한 암세포만 남아 예후가 불량하다. 치료 효과는 입증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 급여로 지원되지 않아 안타깝다.”
-전립샘암 표적 치료를 위해서는 BRCA 변이를 확인하기 위한 암 유전자(NGS) 검사가 필요해 보이는데, 언제 시행해야 하나.
“전립샘암 전이가 있거나 예상될 때다. 처음부터 암이 광범위하게 퍼진 4기 전립샘암으로 진단받았을 때나, 초기 전립샘암으로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는데 PSA 수치가 높아졌을 때다. 예후가 불량한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으로 BRCA·HRR 변이가 있으면 파프 저해제를 병용하는 표적항암 치료가 특히 효과적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별급여로 NGS 검사비를 지원한다. 담당 의료진이 권한다면 NGS 검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길 바란다.”
-전립샘암이 전이됐다는데 NGS 검사에서 유전자 변이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
“그래도 파프 저해제로 표적항암 치료가 가능하다.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인데 BRCA·HRR 등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표적항암 치료 효과가 우수하다. 그런데 이런 유전자 변이가 없어도 표적항암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기존 치료보다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 예후에 유리하다는 것을 임상 연구로 확인했다. 항암화학요법 치료 경험이 없는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 환자에게도 기존 치료법에 린파자를 병용했더니 질병의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이 34% 감소했다. rPFS 중앙값은 24.8개월로 대조군(16.6개월) 대비 약 8개월 증가했다. 이 단계에서 8개월 연장은 굉장히 큰 차이다. BRCA·HRR 변이가 있을 경우 그 효과가 더 높았다. 쉽게 말해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샘암 1차 치료에 표적 유전자 변이가 있을 때 표적항암 치료 효과가 가장 좋았고, 표적이 없더라도 생존 기간 연장 등 효과를 보인다. 전이가 됐고 표적이 없어도 희망을 잃지 말고 적극 치료에 임하길 바란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