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워크센터는 2017년 2월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을 계기로 운용역 이탈이 계속되자 정부가 꺼내든 미봉책이다. 기금본부를 서울로 복귀시키거나 서울사무소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스마트워크센터를 고수했다. 기금본부 직원들은 “중요 업무 상당수가 서울에서 이뤄지는 데 센터 이용에 제약이 많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서울스마트워크센터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국민연금 서울남부지역본부 앞으로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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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 서울 가지 마” 눈치 주는 상사도
2일 정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국민연금 서울남부지역본부에 기금본부 전용 스마트워크센터를 만들어 지난 9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서울에 있는 투자회사와 미팅이 잦은 기금본부 운용역들이 출장길에 이용할 업무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당일치기 출장자가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며칠씩 서울에 머물러야 하는 운용역이 유연 근무의 일환으로 이 센터를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서울스마트센터의 하루 사용 인원을 기금본부 현원의 10%로 제한하고, 실별로도 이용 가능 인원을 할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분기 기준 국민연금 기금운용직은 총 321명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서울스마트센터에서 근무할 수 있는 운용역은 하루 최대 32명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은 사용 인원 제한 규정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금본부 직원들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한 기금운용역은 “사안에 따라 특정 부서의 서울 근무가 잦아질 수 있는데, 그때마다 다른 부서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라며 “본사 PC로 원격 접속을 할 수 없게 막아놔 센터에 갈 때마다 업무 파일을 따로 백업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고 했다.
또 국민연금은 전 주까지 신청을 완료한 운용역에 한해서만 해당 주에 센터 이용을 허가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근무 장소를 아예 서울로 옮겨 며칠씩 근무하려는 운용역에게만 해당하는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운용역들은 이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한 직원은 “시장 변동성이 큰 요즘 같은 시기에는 위탁 운용사와 릴레이 미팅을 잡을 일이 많고, 며칠씩 서울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며 “그런데도 무조건 일주일 전에 예약하도록 하는 건 센터 이용도를 낮추려는 의도로 느껴진다”고 했다.
또 다른 운용역은 “전주에 정착하지 않고 서울과 전주를 오가는 주말부부 직원이 많다 보니 (스마트워크센터 근무에 대한) 수요가 클 수밖에 없다”며 “센터 이용 규정에 쓸데없는 제약이 많은 건, 젊은 직원들을 최대한 전주에 묶어두려는 꼼수로 보인다”고 했다. 이 운용역은 “어떤 부서는 부서장이 필요하면 편하게 서울에서 일하라고 하고, 어떤 부서는 쓸데없이 자꾸 올라가지 말라고 눈치 준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6년 전 전주로 내려갔다. 여전히 많은 기금본부 직원이 서울에 거주하며 전주를 오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역에서 탑승객들이 KTX에 오르는 모습. /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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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인력 줄퇴사 핵심 사유 외면
스마트워크센터가 들어선 국민연금 서울남부지역본부는 2017년 1월까지 기금본부 임직원이 근무하던 건물이다. 기금본부는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그해 2월 전주로 둥지를 옮겼다. 기금본부 퇴사자 수는 2014년 9명, 2015년 10명에서 지방 이전이 결정된 2016년 30명으로 급증했다. 2017년에도 27명이 기금본부를 떠났고, 이후로도 매년 30여명이 전주를 떠나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국민연금 기금운용직(321명)은 정원(376명)보다 55명이나 부족한 상태다. 지방 근무 기피 현상에다가 적은 인력으로 1000조원에 육박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려야 하는 부담감까지 더해지면서 기금본부의 고급 인력 이탈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기금본부 서울 복귀설이 줄기차게 흘러나왔으나 정부는 전주 정치권의 반발 등을 우려해 스마트워크센터 설립이라는 절충안을 택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을 1%포인트(p) 이상 높이고자 현재 기금운용위원회가 쥐고 있는 전략적 자산 배분 권한을 기금본부로 넘기겠다고 했다. 정부가 기금본부의 역할을 키운 만큼 그에 맞는 근무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서울사무소 설치 계획을 정부안에 담을 수 있다는 말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윤순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기금본부의 지역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우선 서울스마트워크센터 추진 내용부터 담았다”며 “서울사무소는 센터 운영 성과를 보고 나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기금운용역은 “수익률을 1%p나 끌어올리겠다면서 정작 운용역 줄퇴사의 핵심 사유로 지적받아 온 근무 장소 문제는 정치적 갈등을 고려해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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