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7일 자신을 찾아온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환자는 국민의힘”이라고 꼬집었다. 인 위원장으로선 ‘이준석 신당론’을 진화하려고 이준석 전 대표의 멘토인 김 전 위원장을 찾았다가 오히려 쓴소리만 들은 것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4일 부산 토크콘서트 현장을 찾은 인 위원장에게 “환자는 서울에 있다”고 한 바 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김 전 위원장의 사무실을 찾아 45분간 비공개 면담한 뒤 기자들에게 “김 전 위원장이 ‘당신 의사 아니냐. 처방은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며 “‘환자가 약을 안 먹으면 어떻게 할 거냐. 환자가 약을 먹어야 한다. 실제로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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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15분 뒤 사무실을 나선 김 전 위원장이 “환자는 국민의힘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표심을 잘 인식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당의 인식이 잘못된 것 같다”며 발언 취지를 분명히 했다. 이어 “인 위원장이 혁신안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 이에 순응할지, 않을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국민의힘은 대통령 얼굴만 쳐다보는 정당이다. 약을 먹이려면 대통령께서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친윤·영남 중진 용퇴론·험지 출마론’과 관련해 “우리나라 역사상, 의원 스스로 공천 포기한 사례가 서너 건밖에 없다. 그 사람한테 ‘정치 그만하라’는 얘기와 같은데, 인생 걸고 해오던 정치를 그만두겠냐”면서 “위원장의 권한에 한계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혁신안을) 관철할 수 있는지를 인 위원장에게 잘 판단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다만 이준석 신당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신당은 국민이 ‘우리나라 정치판을 바꿔야겠다’고 판단하면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며 “그런데 시기적으로 국민이 정치제도를 바꿔야겠다고 판단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나 본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두 사람의 만남 직전 페이스북에 “집권 초기 1년 반을 당권 장악과 대장동 공방전으로 허비한 상황에서 지금 정책 이야기해 봐야 ‘공매도 1일 천하’ 같은 일만 반복될 것”이라며 “여든다섯(김 전 위원장) 어르신의 고민을 85년생이 힘 있는 데까지 정치의 화두로 올려보겠다”고 적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일 김 전 위원장을 만나 조언을 들었는데 신당 창당의 각오를 밝혔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준석 신당과 중진 험지론이 맞물리면서 여당 내에선 위기감도 나왔다. 여권 지도부 인사는 통화에서 “인요한 혁신위가 너무 일찍 수도권 험지 출마 권고안을 꺼내면서 대상자를 몰아세운 감이 있다”며 “지도부 내에서도 공천 국면에서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자칫 빠져나가 신당이나 제3지대로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이날 김기현 대표와 가까운 유상범 의원은 라디오에서 “김 대표가 보궐선거 이후 ‘국회의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큰 영광은 다 이뤘다’고 말했다”며 “여러 가지로 고민할 것으로 안다”고 공개했다. 김 대표가 험지 출마나 불출마를 고민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효성·전민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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