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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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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방탄 전락…‘면책특권’ 존치 논란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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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의정활동 보호장치

무분별한 폭로 등 정쟁도구 변질

국민·정치권도 축소·폐지 요구

‘청담동 술자리’ 의혹 결국 허위 판명

김의겸 불송치… 더탐사 대표는 송치

일각 “아니면 말고 식 발언 잦아” 비판

알 권리·무분별 폭로 사이 균형 필요

“유권자가 심판 가능한 문화 조성해야”

“일반인 같으면 거의 구속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발언하니까 이게 면책특권이 있는 것.”(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독재정권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면책특권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믿는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세계일보

국회의원 배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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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의원에 보장된 면책특권은 헌법 제45조에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불체포특권과 함께 입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의원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다.

이들 특권이 여야의 정쟁 속 의원들의 ‘방탄’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의정활동과 거리가 먼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를 한 의원들도 특권을 방패 삼아 형사처벌을 면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사정이 이러니 일반 국민은 물론 정치권에서조차 면책특권 폐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각 당의 혁신위원회는 면책특권 폐지를 불체포특권 포기와 함께 혁신안으로 단골메뉴 내놓듯 하고 있지만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특권 폐지를 위한 개헌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이에 동조하는 의원들도 적다. 의원에게 특권이 부여된 역사성을 따져볼 때 폐지를 가볍게 논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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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송영길 대표 시절 장경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한 ‘정당혁신추진위원회’는 3선 초과 동일 지역구 출마 금지와 의원 면책·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면책특권을 제한하기 위해 △국회 윤리특위 상설화 △윤리조사위원회 신설 △시민배심원단 구성 △징계 심의기간 명시를 제안했다. 뒤이은 김은경 혁신위는 불체포특권 포기를 첫 과제로 제시했다. 이들 혁신안은 모두 당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2018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서 출범한 ‘김용태 혁신위’는 면책특권 폐지를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는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현재 활동 중인 인요한 혁신위는 2호 혁신안에 불체포특권 포기를 명시했지만 면책특권 폐지는 담지 않았다.

특권 내려놓기를 둘러싼 실효성 있는 논의는 멈춰 있는 상태다. 의원들의 서로를 향한 막말과 책임감 없는 의혹 제기 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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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방탄, 면책특권

“국정감사 자리에서 저런 지라시 수준도 안 되는 걸 가지고 국무위원을 모욕해 놓고 국정감사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감사 중 민주당 김의겸 의원을 향해 이같이 말했다. 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 로펌 김앤장 소속 변호사 30명이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한 장관은 “장관직 포함 앞으로 제가 일할 모든 공직을 걸겠다”며 정면 반박했다.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결국 허위로 판명났다. 경찰은 김 의원을 불송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함께 고소·고발당한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의 대표는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판단을 달리한 건 결국 국회의원 면책특권 때문이었다.

2021년 국정감사 때는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조직폭력배 20억원 뇌물설’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역시 신빙성이 떨어지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돈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박철민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김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돼 있지만 진전은 없다. 위 두 사례 모두 국회의원만 면책특권으로 보호받은 셈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국내외 비교와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면책특권은 ‘임기 중’은 물론 ‘임기 만료 후’에도 임기 중 직무상 발언·표결을 국회 외에서 면책하므로 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면책특권 제한 사유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아 절대적이라 볼 수 있다.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면책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직무 수행상 행한 발언이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근거가 부족하거나 진위를 확인하려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면책될 수 있다는 판례도 있다.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면책특권이 정쟁을 위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면책특권을 이용해서 막 근거 없이 막 찌르고 보고 이러면 안 된다”며 “근거와 논거를 가지고 발언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면책특권이 있어야만 폭로할 수 있었던 시절은 군사정권 때 얘기”라며 “개헌을 하게 되면 면책특권 조항은 폐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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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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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에도 알권리 보장해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없다면 국민의 알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1995년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고, 검찰수사로 이어져 노 전 대통령이 5000억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밝혀졌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질 때도 의원들의 폭로는 공론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폭로는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됐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윤태곤 실장도 “어떤 국회의원이 권력에 대한 걸 폭로한다든지 그런 것들도 있을 수 있다”며 면책특권 유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 실장은 “어떤 것이든지 부작용도 있다. 지금 부작용이 많이 도드라지는데 법이 없어서 그런가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면책특권의 범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헌법 제45조의 ‘국회에서’를 물리적·공간적 개념이 아닌 의정활동이 실제로 이뤄지는 기능적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사회 변화에 발맞춰 보도자료의 배포뿐 아니라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 등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은 2005년 삼성그룹이 검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이른바 ‘안기부 X파일’에 있는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노 전 의원은 법사위에서 이름을 공개하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이 내용을 올렸다. 재판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행위는 국회의원 면책특권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홈페이지 게시는 면책특권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보도자료 배포가 면책특권에 해당한다는 판례만 있었기 때문이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헌법재판소의 기준, 법관들의 생각 등 정해진 기준이 영구 고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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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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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있는 한계설정 동반돼야

면책특권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의정활동과 국민의 알 권리, 그리고 무분별한 폭로 사이 균형문제는 지속해서 논의돼 왔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달 26일 민주당에 “허위·가짜뉴스 유포 행위에 대해 국회의원 면책특권 적용을 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공식 제안한 바 있다.

무분별한 허위사실 유포와 막말을 막기 위한 면책 한계의 설정은 이미 제시됐었다. 2014년 국회의장 직속으로 설치된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불체포특권·면책특권은 헌법 명문으로 합리적인 범위를 설정할 것을 권고했다. 구체적으로는 면책특권 대상에서 명예훼손, 모욕, 민주적 기본질서 침해를 제외하는 방안이다.

전문가들은 정당이 자체적으로 면책특권의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실장은 “국회 윤리위 같은 것도 유명무실하고 각 당에서도 그렇다”며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각 당이 이런 경우에는 ‘공천에서 페널티를 두자’는 공동 조항을 만드는 게 실효성이 더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차 교수는 “헌법에 면책특권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국회법에 제재 조항을 둘 경우에는 위헌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 “여야 자체적으로 경고해서 유권자들이 심판할 수 있는 정치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당에 책임 있는 자세도 요구했다. 전예현 정치평론가는 “여야 모두 문제를 제기할 때는 당 전체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국민 신뢰의 문제”라며 “당 차원에서 철저하게 검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우석 기자 d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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