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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사진이 있는 도서관] 피렌체·로마·제노바… 여성 최초 퓰리처상 수상자가 기록한 ‘神들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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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

이디스 워턴 지음 | 김동훈 옮김 | 글항아리 | 360쪽 | 3만3000원

이탈리아 정원에는 꽃이 많지 않다. 흔히 ‘유럽의 정원’ 하면 떠오르는 오색찬란한 정원과는 거리가 멀다. 뜨겁고 건조한 이탈리아의 기후 때문에 정원에서 꽃을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의 정원은 흐르거나 고인 물, 석조물, 상록의 나무처럼 단순한 요소로 절제된 아름다움을 뽐낸다. 미술이나 건축과 마찬가지로 서양 정원의 시작 역시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비롯됐다.

소설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을 받은 이디스 워턴은 직접 정원을 설계하고 가꾸는 정원 애호가였다. 이 책은 그가 잡지사의 의뢰를 받고 수개월간 이탈리아 피렌체·로마·제노바 등을 여행하며 옛 정원을 취재해 쓴 글이다. 그는 매혹적인 이탈리아의 정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막 돌아온 이의 눈과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정원의 마법으로 가득 차 있다. (…) 그러나 그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를 찾지는 못했으리라.”

조선일보

이탈리아 중부 시에나에 있는 빌라 체티날레. 빌라 앞쪽으로는 단정한 회양목 정원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산꼭대기까지 이어진 돌계단과 작은 암자가 보인다.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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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답게 비밀 정원으로 탐험을 떠나듯, 독자들을 천천히 정원 속으로 이끈다. 멀리서 바라본 전경부터 묘사하기 시작해 서서히 정원 안으로 들어가며 나무와 장식의 디테일까지 파고든다. 사람이 떠난 지 오래돼 수풀로 뒤덮인 빌라에선 “잠에 빠진 숲의 신들처럼 보이는” 조각상들과 만나고,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굴 ‘그로토’에선 기묘한 환상의 동물 부조를 발견한다. 플라타너스·사이프러스 같은 나무에 얽힌 신화나 분수에 설치된 조각상의 의미 등 풍부한 인문학 지식도 덤으로 얻게 된다.

1904년 출간된 이 책은 12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됐다. 역자의 이력도 남다르다. 헌법재판소의 헌법연구관 겸 공보관으로 그 역시 정원과 텃밭을 가꾸어온 정원 마니아다. 책의 대부분 사진은 그가 이탈리아 빌라와 정원을 공부하며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천국이란 뜻의 영어 ‘파라다이스(paradise)’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뜻하는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대리석을 자기 집 뜰에 옮겨 놓는다고 낙원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원은 집의 연장이며, 이탈리아 정원에서 배워야 할 건 그 정신뿐이라고 말이다. 정원을 향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글과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만의 작은 천국을 만들고 싶어진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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