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ㆍ우울증약 복용하는 1형당뇨 아이의 엄마들
학교운동장서 하루종일 대기하고, 체험학습장 동행
"질환 명칭 췌도부전증으로…중증난치질환에 포함돼야"
"혈당기 잘 작동하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5살 1형당뇨 아이 |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삶이 너무 힘들어 울고 싶은 엄마들이 있다. 그러나 아이 앞에서는 울지 못한다. 아이가 좌절할 수도 있고, 자기 상황에 대해 무서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1형당뇨 아이의 엄마들이다.
김미영 1형당뇨환우회 대표는 "1형당뇨 아이의 엄마 중에는 하루 종일 학교 운동장에서 대기하다 빈 시간에 책을 읽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독서왕이 된 사람도 있다"면서 "자녀가 수학여행을 가면 숙소 옆에 별도의 방을 잡아놓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인슐린 주사를 놓으러 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 1형당뇨 아이도 가슴이 아프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친구들로부터 모진 말을 들어도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못한다.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의 작은 가슴 속에 묻거나 몰래 눈물을 삼킨다.
김 대표는 "하루빨리 1형당뇨가 중증난치질환으로 정해지고, 질환 이름도 췌도부전증으로 바뀌어서 고통받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한다"고 했다.
김 대표의 아들도 4살 때 1형당뇨를 진단받았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비당뇨인과 다름없이 공부하고, 먹고, 축구한다. 김 대표는 2017년부터 1형당뇨병 환우회 대표를 맡고 있다.
◇ "이건 낫는 병이 아니야. 계속 함께 가는 거야"
(16세에 1형당뇨 진단받은 20대 후반 여성)
1형당뇨 20대 후반 여성이 12년 전 발병 당시 입원했을 때 모습 |
나는 2011년에 발병한 13년 차 1형 당뇨인이다.
처음 케톤산증으로 응급실에 옮겨져 1형 당뇨를 진단받았을 때, 나는 16살 여중생이었다.
교수님은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췌장에 있는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를 내 몸(면역세포)이 공격해 죽이는 1형당뇨라는 병에 걸린 것이고,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해맑게 물었다. "네, 이해했어요. 그럼, 주사를 언제까지 맞아야 해요?" 교수님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건 낫는 병이 아니야. 계속 함께 가는 거야." 나는 놀랐다.
그 말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처음 당뇨를 진단받은 사람은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혈당을 체크하고, 기록하고, 주사 맞는 법을 배우고, 탄수화물 양을 계산하는 법도 알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절망감을 느낄 순간이 적었던 것 같다.
1형당뇨 20대 후반 여성이 마라톤대회에서 받은 메달 |
절망은 시간이 흐르고 당뇨에 익숙해질수록 다가왔다. 시험 전날 푹 자려고 누웠는데 저혈당 때문에 중간에 깨서 뭔가를 먹고 다시 자다 보면 컨디션이 최악일 때가 있었다.
식당에 갔는데 혈당이 너무 높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놀이공원에 가서 대기 줄을 오래 섰는데 갑자기 저혈당이 와서 자리를 떠나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였고, 나는 때때로 폭식했다. 인슐린 주사를 말도 안 되게 많이 맞고는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집에 오곤 했다. 도넛, 떡볶이도 먹었다. 배가 터질 때까지 꾸역꾸역 먹었다. 부모님께는 들키기 싫어 집에 와서는 또 밥을 먹었다.
이런 생활이 몇 년 이어졌다. 스무살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토했다. 답답하고 어지럽고 죽을 것 같았다. 혈당을 재보니 측정 불가능한 고혈당으로 나왔다. 택시를 타고 응급실을 찾아갔고, 검사 결과 또다시 케톤산증이었다.
며칠 입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죽음의 문턱을 밟고서야 당뇨와 동행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1형당뇨 20대 후반 여성이 사용하는 당뇨 관리기기 파우치 |
이제 주변의 시선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전에는 화장실에 숨어서 주사를 맞았지만 이제는 식당에서도, 등산하면서도, 바다에서도, 회사의 내 자리에서도 맞는다.
나는 1형당뇨 커뮤니티에도 가입했고, 그곳에서 관리를 잘하는 당뇨인들을 보고 배운다.
커뮤니티에서 마음 아픈 순간들이 있다. 1형당뇨를 막 진단받은 환우들의 부모님들이 쓴 글을 볼 때다.
그분들은 고통스럽게 자책한다. 혹시 임신했을 때 뭔가를 잘못한 것은 아닐까. 아이한테 음식이나 약물을 잘못 준 적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우리 아이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 생각을 자꾸 하고 슬퍼한다. 그런 부모님들을 보면 나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이렇게 슬퍼하는 부모들을 보고 나서야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게 됐다.
아이의 삶이 바뀌면 부모와 그 가족의 삶도 바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1형당뇨를 진단받고 가족들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우리 부모님은 누구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했다.
◇ "아기가 당뇨라고요?"…간호사는 소리쳤고, 아이는 울었다
(1형당뇨 8살 여자아이를 둔 엄마)
"저 빨리 낫게 해주세요" 온라인 예배에서 기도하는 5살 1형 당뇨 아이 |
나의 딸은 생후 40개월 만에 1형당뇨를 만났다.
발병 초기에 나는 건들기만 해도 눈물이 나왔다. 이 아이가 합병증 없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내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인슐린을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인슐린이 불량인지 부유물이 보였다. 다시 인슐린을 처방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아이가 쓰는 인슐린은 동네 약국에서 취급하지 않았다. 남편이 수소문 끝에 그 인슐린을 보유하고 있는 약국을 찾아냈다. 우리는 이 약국과 같은 건물에 있는 내과로 달려갔다. 먼 길이었고, 토요일이어서 대기가 길었다.
우리 아이 차례가 되자 간호사가 진료 전 혈당 검사를 하자고 호명했다. 나는 네 살 된 아이 손을 잡고 간호사에게 갔다. 그러자 그 간호사는 "아기가 당뇨라고요?"라고 큰 소리로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순하고 조용한 딸은 소리를 지른 간호사와 놀라는 다른 환자들을 쳐다보며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지 울기 시작했다. 평소에 잘하던 혈당 체크도 하기 싫다면서 울었다.
"이제는 좀 마음 편하게 먹게 됐어요" |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변질된 인슐린을 보여주고 처방을 부탁했더니 의사는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의료 수가가 삭감된다는 이유였다. 검사를 그 병원에서 한 것도 아니고, 근거 자료가 없기에 처방이 안 된다고 했다. 아이는 건강보험공단에 1형당뇨병 환자로 등록돼 있는데도 의사는 소용없다고 했다.
다니는 병원은 먼 거리의 대학병원이고, 예약도 곧바로 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었다. 사정사정해서 당장 사용할 인슐린 1개를 겨우 처방받고는 돌아왔다. 그 후 대학병원에 예약하고 한참 기다린 뒤 진료를 받은 다음에야 약국에 가서 겨우 두 달 분량의 인슐린을 구했다.
우리 아이는 지금 8살이고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기독 대안학교에 다니는 딸은 반에서 유일한 여자아이다. 활기차고 신나게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린다. 학교에서 인슐린 주사는 선생님이 놓아 주신다.
지난 4년은 두 눈이 가려진 채 끝없는 터널을 지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식구는 잘 버텼고, 그동안 쌓인 노하우와 인적, 기술적, 의학적 도움으로 이전보다 훨씬 편리하고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딸의 삶에 대한 생각도 걱정에서 소망으로 바뀌었다. 나는 딸이 몸도 마음도 더 단단한 아이로 성장했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따뜻한 아이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 "아이가 현장학습 가면 엄마도 가요"
(7살 때 시각장애, 8살 때 1형당뇨 진단받은 아이의 엄마)
그림을 그리고 있는 1형당뇨 아이. 8살 때 1형당뇨를 진단받았다. |
우리 아이가 7살 때 시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1년 후 8살에 1형당뇨가 발병했을 때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슈거트리'라는 카페를 알게 됐고 연속혈당측정기, 인슐린펌프 등 1형당뇨 관리기기를 접하게 됐다.
그런데 아이는 병원에서 퇴원할 때 인슐린펌프 착용을 거부했다. 줄이 달린 장치가 몸에 부착돼 있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점심 먹을 때는 고혈당을 막기 위해 인슐린 주사를 해야 한다. 저시력으로 잘 보이지 않으니 아이 스스로 주사하는 것은 힘들었다. 학교의 도움은 받지 못했다. 보건 교사가 주사를 놓아주는 것은 법적으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엄마인 내가 점심시간 전에 보건실에 방문해 인슐린 주사를 놓았다. 때로는 보건실 문이 닫혀 있어 애를 먹기도 했다.
생존 수영 수업을 할 때도 대기해야 했고, 현장 학습 장소에도 따라갔다. 다른 엄마들과 달리 나는 방학이 좋았다. 등교 때부터 하교 때까지 학교에서 대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 정도 인슐린 주사를 놓아주다 무선 인슐린 펌프가 나왔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아이가 핸드폰으로 인슐린을 주입하고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지금의 혈당 관리 도구는 여전히 불편하지만,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보조도구, 인슐린 펌프 등으로 아이의 혈당 관리를 할 수 있어 늘 감사하다.
◇ "너는 환자이니 우리 축구에 끼어들지 마"
(5살에 1형당뇨 진단받은 아이의 아빠)
5살에 1형당뇨 진단받은 아이. 지금은 11살이다. |
우리 아이는 5살때인 2017년 7월에 1형당뇨를 판정받았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우리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1형당뇨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개했다.
그래서 얻은 득도 있었다. 3학년이었던 작년에 아이는 이동수업 중 갑작스러운 저혈당으로 주저앉았다. 의식을 잃기 직전 상태였다. 그때 한 친구가 교실로 뛰어가 주스를 가져와 먹였다. 응급처치가 이뤄진 것이었다.
반면에 주변 아이들로부터 언어폭력과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인슐린만 적절히 주사하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데도 "너는 병이 있으니 이런 거 먹으면 안 돼"라고 하고는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했다.
체육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축구라도 같이하려고 하면 친구들은 너는 환자이니 빠지라고 했다. 저혈당에 대비하기 위한 주스나 간식을 친구들이 빼앗기도 했다.
아이들은 "너는 단 걸 얼마나 먹었길래 당뇨병에 걸렸어?. 엄마 아빠도 당뇨야?"라고 집요하게 묻기도 했다.
이 정도는 넉살이 좋고 외향적인 우리 아이가 농담으로 받아치기도 하면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엄마와 아빠가 마음 아파할까 봐 아이가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자주 있는지 물었더니 아주 빈번한 일이라고 했다. 그 유형을 A부터 Z까지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 "수면제 없이 잘 수 없었고, 우울증 약을 먹어야 했다"
(14세 1형당뇨 아이의 엄마)
1형당뇨 14세 아이 |
2022년 3월부터 13세 딸아이는 살이 빠지지 시작했다.
수시로 화장실에 다녀오고, 음식을 많이 먹었고, 갈증도 호소했다. 그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어서 급성장기 증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그해 4월 코로나로 딸아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그때 피검사를 하면서 1형당뇨병임을 알게 됐다.
1형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평생 외부에서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는 난치성 질병이다. 아직은 치료 방법이 없고, 평생 인슐린 주사를 해야 한다.
나에게는 이런 사실이 너무 큰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우울증 치료제를 4개월 넘게 먹어야 했다.
내가 다시 일상을 회복하게 된 것은 발병 4개월 후에 인슐린펌프를 체험한 덕분이었다. 나는 1형당뇨병 환우회 카페인 '슈거트리'에 가입하면서 여러 최신 기기로 슬기롭게 혈당을 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도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전에는 우리 딸은 하루에 평균 15번 정도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아야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한 번의 인슐린펌프 착용으로 3일 동안은 휴대전화 터치만으로 인슐린 투여가 가능해졌다. 덕분에 아이의 춤 추던 혈당도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딸아이 생활유형에 따라 유·무선 인슐린 펌프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이는 발병 이전의 모습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슈거트리'가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국가가 하지 못했던 일을 김미영 환우회 대표와 단체가 이뤄냈다. 이제는 국가가 먼저 손을 내밀고 우리 환우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란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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