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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선언, 굿 스타트 b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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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확장억제 능력 신뢰해야
워싱턴선언이 이를 충분히 입증
양국 리더십 바뀌어도 유지돼야


매일경제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 겸 매일경제 명예기자>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에 대한 한국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한 노력은 2023년 4월 워싱턴선언으로 결실을 맺었다. 워싱턴선언으로 북한에 대한 억지력은 한층 더 강화됐다. 뿐만 아니라 자체 대북 핵 억지력을 갖추겠다는 한국 내 여론을 누그러뜨렸다는 점도 미국으로서는 큰 성과다. 어렵게 마련한 워싱턴선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양국 지도자들 앞에 놓인 큰 숙제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함없이 유지돼야 할 것이다.

■한미 협력의 결실: 워싱턴선언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게 된 이유는 고체연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전술핵무기체계 도입 등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양적, 질적으로 고도화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위협 고조는 특히 미국 핵우산 신뢰성에 대한 불확실성과 한국 국민들의 우려로 이어졌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완벽하게 대응해 줄 것인가 하는 한국의 의구심과 우려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대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무시하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한국의 이같은 불확실성과 우려는 남한에 미국 핵무기를 배치하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방식의 핵 공유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웠다. 심지어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초래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미국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 동맹국의 개별 및 집단적 방어 능력 강화, 미국의 확장억제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양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중단됐던 기존 확장억제 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하는 등 협력을 강화했다. 미국의 고위급 공약 이행 선언, 한미 합동군사훈련 강화, 미국의 잦은 전략자산 순환배치 등의 노력도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의 요구사항은 그 이상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미군의 전략적 주둔이 영구적이고 가시적이어야 하며, 확장억제에 있어서 더욱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해야 하고, 미국의 핵 계획에 대한 더 큰 통찰이 있어야 하며, 미국의 핵을 한반도에서 사용할 여부와 시기에 대한 더 큰 목소리를 요구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현재의 확장억제 상태를 바꾸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가장 효과적인 억지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를 변경하는 것은 새로운 취약점이 노출되거나 비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핵 작전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데 있어서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독점권이 희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같은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간 협력이 한반도 억지력을 높일 수 있다고 인식하고 한국 정부와 다양한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가 바로 2023년 4월 워싱턴선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선언을 두고 “확장억제 전략의 유례없는 확대와 강화”라며 “한미동맹을 핵무기에 기반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격상시켰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한국 국민들에게 미국의 핵 의사결정에 있어 한국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워싱턴선언 이후 9개월이 지났다. 현재까지도 매우 긍정적이다. 신설된 한미 핵협의그룹(NCG)는 지난 해 7월 첫 만남 이후 15일에 2차 회의한다. 기존 EDSCG와 한미통합국방협의체도 이어졌다. 지난 해 11월에는 양국 국방장관이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워싱턴선언 후속조치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지난 해 8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와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한미일 3자 확장억제 틀이 주요 의제였다. 이러한 고위급 접촉 외에도 한미 관료들은 워싱턴선언 의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실무그룹 회의와 화상회의를 빈번히 열었다.

이같은 교섭을 통해 양국은 미국의 핵 작전에 대한 한국의 재래식 무기 지원 공동계획을 논의했다. 민감한 정보 교환을 촉진하기 위해 보안 및 정보 공유 프로토콜도 개발했다. 핵 위기 상황에서 정상 간 긴급통화 수단도 검토했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연합대응작전을 개발하기 위해 테이블탑 시뮬레이션을 계획했으며, 안보환경 변화를 반영해 10년 만에 맞춤형 억제전략을 개정했다.

미국은 40년 만에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의 첫 부산항 방문을 포함해 미군 전략자산의 순환배치를 더 자주 하겠다는 약속을 잘 이행했다. B-52 폭격기의 한국 최초 착륙, 미 항모전단의 두 차례 방문, 유도미사일잠수함(SSGN) 입항 등이 이어졌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의 전략자산을 지금과 같은 속도로 순환배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미 양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 합동 실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2024년에 합동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간극

바이든 행정부도 워싱턴선언을 높이 평가했지만, 워싱턴선언을 좀 더 냉정하게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선언에 대해 “확장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한 신중한 조치”라며 “이는 동맹 사이에 더 긴밀한 협력과 조율을 가져올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윤 대통령이 ‘한미 핵 공동작전’의 기획과 실행을 언급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내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대체적인 평가는 긍정적이었지만 전문가들은 워싱턴선언이 이전의 동맹 정책과 관행, 메커니즘을 재차 언급하거나 점진적으로 구축할 뿐이며 동맹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핵이 없는 한국이 핵으로 무장한 미국의 보호자에 의존하는 비대칭성이 여전하므로 한국의 군사력이 제한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들이 자주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핵 보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보수 언론들조차 “한국은 NPT(핵확산방지조약) 잔류에 동의함으로써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핵으로 무장하려는 꿈을 포기했다”고 진단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워싱턴선언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있다. 동맹 간 협력의 틀을 확립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서는 한미가 앞으로 얼마나 긴밀하고 효과적으로 협력하여 지속가능한 목표와 원칙을 유지해 가는 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워싱턴선언의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일부 서로 다른 관점과 간극을 극복해야 한다.

첫번째 과제는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해 한미가 서로 다른 대응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핵무기만이 핵무기 사용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핵무기로 대응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구해왔다. 반면 워싱턴은 핵무기를 포함할 수도 있는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단력 있는 대응’을 언급하면서, 모든 상황에서 핵사용을 확답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재래식 대응이 목표에 더 효과적이고 적합할 수 있고, 맹목적인 핵대응은 자칫 불필요한 핵 대결로 확전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두번째 과제는 서로의 계획과 관행에 대한 더 많은 정보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핵 계획과 작전에 대해 더 많은 정보와 더 큰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수십 년간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핵 억지를 미국의 전적인 책임으로 여겼고, 한국은 꾸준히 미국의 핵 정책과 계획에 대한 정보 공유를 요청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려면 동맹의 재래식 능력과 핵 능력 사이의 긴밀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미국의 핵 작전에 대한 재래식 군사 지원을 포함해 동맹국에 더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정보를 공유할 의향이 생겼다. 다만 그 선을 어디에 그을 지 명확하지 않다. 가장 분명한 것은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핵무기 사용을 명령할 단독 권한을 갖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또 재래식 무기 영역에서 한국과 오랫동안 개발해 온 합동작전계획(OPLAN)이 있지만 핵 작전을 위한 공동작전계획 개발을 계속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워싱턴은 정보공유와 공동계획을 서로 주고받는 양방향 거리로 보고 있다. 특히 유사시 북한의 핵•미사일을 선제타격하는 킬체인을 포함한 한국의 3축 체계가 자칫 불피료한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 가능성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 미국은 한국의 3축 체계는 한미동맹의 연합 지휘구조에 긴밀히 통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한국의 3축 체계는 한국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북한을 억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므로, 한미연합 지휘구조에 3축 체계가 통합돼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얼마나 부응할지 의문이다.

이처럼 정보공유와 공동계획을 둘러싼 두 동맹국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민감한 과제가 될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이 뒷받침해야

워싱턴선언은 현재 진행형이다. 워싱턴선언 하나 만으로 한미동맹이 크게 변했다고 하기 어렵다. 워싱턴선언은 그러나 한반도 전쟁 억지와 관련해 한미 간 분업을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 변혁의 종착역은 한미 양국이 더욱 긴밀하게 통합돼 북한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양국이 상호의존적이며 보다 평등한 파트너십을 달성하는 것이다.

워싱턴선언의 이같은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은 서울과 워싱턴의 강력한 리더십에 달려있다. 한국의 안보 의사결정권자들은 독자적인 핵무기 추구의 위험과 단점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한반도에 대한 미국 확장억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미국 지도부는 확장억제 정책에 있어 한국에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미국 내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윤석열-바이든의 관계를 넘어 양국 리더십 교체가 있더라도 워싱턴선언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한국 정치권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최근 달성한 한미동맹의 성과를 뒤집는 미국 우선주의로의 복귀를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양국의 동맹 지지자들은 워싱턴선언과 후속 협의들을 제도화하기 위해 하루속히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워싱턴선언 채택 이후 한미 양국의 상호 방문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동맹의 결속과 결의를 보여주는 조치들이 잇따랐다는 점이다. 또 한국 내 조사에서 독자적인 핵무기 확보 필요성에 대한 여론도 잦아들었다. 반면 북한 핵 위협은 가속화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밀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핵억지력 강화와 이를 위한 한국의 역할 확대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질 것이다. 워싱턴선언을 이행하고, 정착시키며, 지속가능하게 하는 데 한미 양국의 에너지가 더 투입돼야 하는 이유다. 한미동맹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

<원문을 보시려면 다음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s://pulsenews.co.kr/view.php?year=2023&no=95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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