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외래환자 수 최근 5년 새 최고치
사업체 10곳 중 2곳만 병가제도 운영
"상병제도와 병가제도 도입 공론화해야"
(사진=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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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정모(28)씨는 25일 독감 후유증 때문에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달 전 독감에 걸린 정씨는 일하기 힘들 만큼 아팠지만 매일 평소처럼 출근했다. 정씨 대신 근무할 직원이 마땅치 않았고, 아파도 일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증상은 심해졌고 정씨는 부비동염까지 앓게 됐다. 그는 “저년차 직장인들은 높은 업무강도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하니까 화가 나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병가는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야 쓸 수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정씨처럼 아파도 일해야 하는 직장인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15일 12월 2주차(12월 3∼9일)의 외래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의심환자 수가 61.3명으로, 2019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연차를 소진하라고 해서 다 썼는데 재택근무 신청이 반려됐다’, ‘독감으로 병가를 내면 무시하는 분위기라 내본 적이 없다’, ‘독감이 다 나으면 퇴사를 말할 예정이다’ 등 독감 증세가 있지만 쉬지 못한다는 게시글과 댓글이 이어졌다.
병가는 근로자가 업무 외 질병이나 사고로 일할 수 없을 때 사용자가 노사간의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으로 부여하는 약정 휴가다. 근로기준법은 병가를 따로 규정하지 않아서 병가 사용을 제한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연차도 근로기준법 제60조 5항에 따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줄 경우 사용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아파도 쉬지 못하는 일터로 인해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도 있어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김모(28)씨는 “3주 전 독감에 걸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팠지만 회사는 병가를 줄 수 없다고 했다”며 “이런 환경 때문에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모(27)씨도 “이전 직장에서 휴가를 마음대로 못 쓰게 하는 상사를 만났다”며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없는 환경 때문에 퇴사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병가제도 실태조사’를 보면, 민간·공공 사업장 2500곳 중 병가 제도를 운용하는 사업장은 21.4%에 불과했다. 이 중 병가 기간에 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장은 63.8%뿐이었다. 병가 사용은 사업체의 규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 4일부터 8일간 진행한 직장인 인식 조사에 따르면 중앙·지방 공공기관은 10명 중 8명(79,9%)이, 300인 이상 민간 기업은 응답자 10명 중 7명(71.6%)이 ‘유급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5인 미만 민간기업은 2명 중 1명(50.6%)만 병가를 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노동자의 건강권이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은 경기침체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하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병가 제도화와 상병수당 도입을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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