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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기적 같은 일이…"..퇴근길 전철서 심정지 환자 살려 낸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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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⑧-서울 서대문소방서 이지혜 소방관

퇴근길 아침 전철서 응급환자 발생 방송 통해 접해

환자는 '임종 호흡' 상태..시민들 도움 받아 CPR 시행

"시민들 따뜻한 맘에 감동..사명감 제고 좋은 기회"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약 1년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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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지혜 소방관이 지난해 2월 22일 서울시 중랑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 구급 이송에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이지혜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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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1년 10월 29일의 아침. 야간 근무를 마친 이지혜(35) 서울 서대문소방서 소방관은 서울 왕십리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몇 정거장을 가더니 갑자기 열차가 멈춰 섰다. 곧이어 안내 방송이 나왔다.

휴대 전화에 블루투스(bluetooth) 이어폰을 연결해 동영상을 보던 이 소방관은 방송 내용을 명확히 듣지 못했지만 그저 일상적인 상황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또 방송이 나오자 이어폰을 뺐다. “응급환자 발생으로 열차 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 소방관이 탄 객차는 아니었고, 환자는 곧 이송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또 “응급 환자 발생으로 응급 처치 중입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소방관은 ‘구급대가 금방 도착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그러나 같은 멘트가 또 나왔다. 이 소방관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곧바로 열차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몰려오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며 환자를 찾았다. 환자는 보이지 않았고 이 소방관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그러던 찰나 “심정지 환자 심폐소생술(CPR) 중입니다”라는 방송이 나왔고, 어느 객차 바로 앞 플랫폼에 서 있던 역무원들을 발견했다.

역무원들의 틈을 뚫고 들어가 보니 그곳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큰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러나 환자를 둘러싼 시민들 중 그 어떤 누구도 정작 CPR을 시행하지 않고 있었다. ‘환자의 호흡이 있다’는 시민들의 말에 지하철 역무실에서 시민들에게 환자의 팔다리를 주무르는 등의 행동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방관은 “맥박 있어요?”라는 말을 던지며 인파를 헤치고 들어갔다. 이 소방관은 환자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맥이 없었다. 호흡은 없고 입만 뻐끔거리는 ‘임종 호흡’ 상태였다. 이 소방관은 당황한 채 “어!어!어! 심폐소생술 해야 해요!”라고 외쳤다. 그와 동시에 환자 옷을 걷으며 바로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옆에 있던 한 시민의 요청으로 역무원은 자동심장충격기(AED)를 갖고 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CPR을 해 온 이 소방관이었지만 동료들이 아닌 시민들과 함께한 CPR은 많이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소방관은 흉부 압박 도중에 AED의 패치를 환자의 가슴에 붙이고 심장의 리듬을 분석해 직접 전기 충격을 가했다. CPR 경험이 무수히 많은 그조차도 평정심을 갖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 차례 전기 충격을 가하고 나니 이 소방관은 침착해졌다.

-“혹시 119와 통화 중인 분 계세요?”

-“네 통화 중이에요.”

-“지금 몇 시예요?”

-“9시 50분이요”

-“9시 50분에 쇼크(shock) 한 번 줬다고 119에 전달해 주세요”
이데일리

이지혜 소방관이 지난 21일 발생한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승용차 화재와 관련해 임시 응급의료소를 설치한 후 다음 임무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이지혜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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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공기마저도 급박하게 흘러갔다. 이 소방관은 머릿속으로 ‘시각 기록! 시각 기록!’이라고 되뇌며 흉부 압박을 재차 했다. 그러고 다음 리듬 분석을 기다리던 중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이 소방관은 구급대원들에게 자신 역시 구급대원임을 알리고 그들을 계속 도왔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 속에 결국 환자는 현장에서 맥이 돌아왔다. 환자의 병원 이송 모습까지 지켜 준 이 소방관에게 출동 대원들이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힘듦이 싹 사라졌다.

땀범벅인 채로 다시 열차에 오른 이 소방관은 자신들의 일처럼 적극 나서 준 시민들의 모습에 따뜻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한창 높았던 때라 마스크 미착용자와 접촉 자체도 꺼려지던 시기였다. 환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이 소방관은 “당시 코로나19에 대한 걱정도 많고 무서웠을 텐데 흔쾌히 도와준 시민들의 선의가 정말 대단하고 놀라웠다“고 회고했다. 그런 시민들의 바람대로 환자도 곧 의식을 찾았다.

이 소방관에게도 그날의 경험은 특별했다. 언젠가 목격자로서 CPR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란 막연한 생각은 했고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잘할 수 있겠지’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실제 그 상황이 되니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이 소방관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소방관은 “구급대원인 저 역시 당황스러웠는데 일반 시민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방관으로서의 자신의 사명감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 소방관은 “내 가족이 아니지만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민들의 그 마음에 감동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출동을 나가고 있는 내 일이 보람되고 자랑스러웠다”며 “이런 따뜻한 생명들을 구할 수 있는 소방관이란 직업에 대한 사명감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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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소방관.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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