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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천태만상 가짜뉴스

"'진짜뉴스'보다 6배 빠른 '가짜뉴스' 거르려면...언론이 똑바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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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신 받는 기성 언론
디지털화 후 베껴쓰기 난무...팩트는 뒷전
한국 언론 신뢰도, 아시아서 최하위
①가짜뉴스 아닌 '허위정보' 용어 사용
②기사 수정·삭제 내역 투명하게 공개
③'미디어 리터러시' 알리는 역할해야

편집자주

총선의 해인 2024년 정치 진영간 적개심을 자극하는 허위정보나 아니면 말고식 의혹제기 등이 더욱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이는 정치권이 대중 동원을 위해 손쉽게 활용하는 선동 수단이지만 지지자들간 증오와 혐오감을 증폭시켜 정치 자체를 질식시킬 수밖에 없다. 이런 가짜뉴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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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계기로 ‘민식이법’(개정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시행된 2020년. 한 유튜브 채널은 교통사고로 자녀를 잃은 민식이 부모의 지인을 자처하는 사람을 전화로 인터뷰한 영상을 내보냈다. “민식이 부모가 경찰서장실에서 난리를 쳤다” "돈 때문에 민식이법에 집착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일부 언론은 유튜브 내용을 여과 없이 인용 보도했고, 부모는 비난에 시달렸다. 민식이법에 대한 운전자들의 시선이 싸늘하던 터였다. 경찰 조사 결과 지인 사칭자가 전부 꾸며낸 이야기였다.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민식이의 부모는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 경기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이 벌어진 지난해 8월 3일. 언론사 10여 곳이 “1명 사망”이라는 속보기사를 내보냈다. 오보였다. 부상자 14명 중 1명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을 뿐 사망자는 없을 때였지만, 팩트 검증도 하지 않고 속보 받아쓰기를 한 것이다. 해당 언론사들은 아무 설명 없이 기사를 수정 또는 삭제했고, 단 한 곳만 기사 하단에 정정보도문을 냈다.

부정하기 힘든 한국 언론의 민낯이다. 언론이 보도하는 기사가 다양한 정보 중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모바일 플랫폼에서 기사가 주로 유통되는 디지털 시대엔 언론이 신뢰를 잃었다. 사실 확인을 생략한 속보 경쟁, 기사 베껴쓰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을 인용한 허위 보도가 난무했다. 양극단으로 나뉜 한국 사회의 이념 지형과 유리한 것만 믿으려는 뉴스 소비자들의 심리에 편승한 편향적·정파적 보도 관행도 강화됐다. 그러나 언론은 반성과 사과에 인색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뉴스를 신뢰하는 국민은 10명 중 3명도 채 안 된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3’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전년도보다 2%포인트 낮아진 28%를 기록했다. 조사대상 46개국 중 41위,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최하위다.

① '가짜뉴스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한국일보

2015년 12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가 CNN방송 로고 앞에 서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캠페인 이후 7년 동안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던 CNN에 출연하지 않다가 지난해 5월 타운홀 미팅에 출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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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신뢰 저하가 전적으로 언론 탓만은 아니다. 언론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힌 것 중 하나는 ‘가짜뉴스 프레임’이다. 언론 보도에 처음 이런 프레임을 씌운 건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Fake News)’로 규정했다. 꼼꼼한 취재와 기사 작성으로 정평 난 미국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방송 등을 ‘미국 국민의 적’이라고 몰아붙였다. 가짜뉴스 프레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가짜뉴스와 오보 간 경계가 흐려졌다.

오보는 '뉴스의 사실관계가 틀렸다는 것이 추후에 확인된 보도'를 뜻한다. 취재 과정에서의 실수 등으로 발생한다. 가짜뉴스는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허위 조작 정보’를 말한다. 오보가 고의성 없는 실수에 가깝다면, 가짜뉴스는 악의적으로 만든 허위 정보다. 하지만 트럼프식 가짜뉴스 프레임은 오보뿐 아니라 정파적으로 불리한 보도 전체에 "못 믿겠다"는 불신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언론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가짜뉴스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해외에서는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뉴스 자체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고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2018년부터 가짜뉴스라는 말을 폐기하고 ‘허위정보’(disinformation)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 방송통신위원회가 2019년 운영한 '허위조작 정보에 관한 전문가회의'도 '가짜뉴스' 용어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가짜뉴스라는 말이 선전·선동을 위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학자들과 전문가 집단은 가짜뉴스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우리도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아서 슐츠버거 주니어 뉴욕타임스 발행인 겸 회장은 지난해 10월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가짜뉴스의 역사를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 등 권위주의 독재정권에서 찾으며 굉장히 음흉한(insidious)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단기적인 이득을 위해 가짜뉴스(fake news)라거나 민중의 적(enemy of the people) 등 언론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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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믿을 수 있는 정보 제공하기


궁극적 책임은 언론에 있다. 언론 스스로 허위정보를 판별하는 사회적 기준이 돼야 한다. 허위정보의 완벽 차단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1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에 따르면 허위정보의 전파 속도는 이른바 진짜 정보보다 6배나 빠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단 몇 초 만에 그럴듯한 허위 정보를 만들어내는 데다 허위 정보 차단 기술이 허위정보 생성과 유통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허위 정보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언론이 허위 정보를 이기는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일보

지난해 3월 동물원을 탈출한 후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 화제가 됐던 얼룩말 '세로'. 위는 실제 촬영한 사진, 아래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이미지. 탈출 당시 세로 이미지를 생성해 공유하는 현상이 놀이처럼 번지기도 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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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욱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기술 개발, 규제 도입 외에도 (언론 등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허위 정보 확산을 막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를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보로서 기사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①온라인 기사의 수정 이력 공개 ②삭제 기사 목록 공개 등 언론의 '투명성 높이기'를 제시했다. 오 연구위원은 “어느 순간 삭제돼버리는 기사는 언론의 신뢰 하락 원인 중 하나"라며 “정보의 속도와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객관성·공정성 등 전통적 저널리즘 기본 원칙들보다 투명성이 우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 소비자가 허위 정보를 감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역시 언론의 역할이다. 미국에서는 가짜뉴스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미디어의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뜻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학습을 정규 교육 과정에 도입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미디어 리터러시 분야 최고 선진국인 핀란드의 국민들은 최근 5년 연속 유럽 미디어 리터러시 조사에서 가짜뉴스 판별력이 가장 높았다”며 “국민 스스로 정보를 걸러서 받아들이고 허위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지 않는 자기 보호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종의 ‘집단 면역’처럼 사회 전체가 허위 정보에 대한 식별력이 높아져야 효과가 크다”며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계속 알려나가면서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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