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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이슈 취업과 일자리

[헤럴드광장]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계속 고용’ 확대가 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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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초저출산 사회에 진입하면서 고령 인력의 ‘계속 고용’ 확대가 생산인구 감소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23 마포구 노인 일자리 박람회’의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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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중위연령은 지난 1993년 28세에서 2023년 46세로 훌쩍 높아졌다. 중위연령이란 전체 국민을 연령순으로 쭉 줄 세웠을 때 정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를 뜻한다.




30년 사이 중위연령이 18세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젊은 인구 비중이 빠르게 줄었다는 말이다. 그동안 20대가 떠받치던 경제를 이제부터는 40대가 짊어지는 형국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율과 그에 따른 급속한 고령화가 원인일 것이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만큼 국가 미래에 장기적이고 큰 충격도 없다. 생산인구는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가 많아져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생산·투자·소비 감소로 경제활력 저하도 불가피하다.

노동력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전방위적 대책이 필요하다. 청년·여성 등 고용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고, 외국인력 활용 확대 방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특히 고령 인력의 활용 확대는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의료기술 발전으로 지금의 고령층은 과거보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교육 수준은 물론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도 매우 높다. 이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수록 국가는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고, 고령층은 소득 단절 없는 노후를 누릴 수 있다. 기업도 고령자들의 풍부한 경험과 숙련을 활용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고령자 계속 고용 로드맵’의 수립을 예고한 바 있다. 정책 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선명한 로드맵이 그려지고, 정교한 실행계획이 뒤따르길 바란다. 욕심을 조금 보태 계속 고용 로드맵에 반드시 담겨야 할 거점들을 안내하면 이렇다.

먼저 세계 최고 수준인 임금 연공성부터 해결하고 출발해야 한다. 직무나 성과보다는 주로 연공에 의해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임금체계’가 우리 기업의 고령 인력 활용에 발목을 잡고 있다. 통상 조직 내 장기근속 근로자일수록 임금수준이 높은데, 이들의 고용을 유지하며 임금을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은 턱없이 부족하다. 하는 일이 달라져도, 생산성이 감소해도 임금은 거의 매년 오르는 구조다. 기업이 임금체계를 바꾸려 해도 노조의 동의 없이는 개편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고령자 고용유지를 포기하거나 신규 채용 축소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진입로를 꽉 막고 있는 높은 ‘고용 경직성’도 해소해야 한다. 우리 노동법은 정규직 근로자로 한번 채용하면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해고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한번 채용한 인력은 조정할 수 없으니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들고, 필요 인력이 있어도 선뜻 고령자를 뽑기 어렵다. 파견 규제도 심해 고령자들이 파견 일자리를 통해 기존 경력과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마저 차단되고 있다.

혹여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은 정책의 경로 이탈을 초래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10여년 만에 또 법정 정년을 늘린다면 고용 여력이 있고 고용 안정성과 근로조건이 양호한 일부 공공기관,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에만 혜택이 돌아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시장 양극화만 더욱 심화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법정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이다. 경총의 연구 결과, 임금 연공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정년연장 인원이 1명 늘어날 때, 정규직 채용인원을 거의 2명 줄어들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청년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고령자들이 퇴직하지 않고 괜찮은 일자리를 유지한다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은 뻔한 일이다.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부족하니 세대 간 ‘의자 뺏기 게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앞선 경로를 찬찬히 챙겨봐야 한다. 일본도 1970년대부터 적극적인 고령자 고용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1986년 ‘60세 이상 정년 노력’ 규정을 의무화했고, 1998년에서야 법정 정년 60세를 시행했다. 그리고 2004년 ‘65세 고용확보 조치 의무화’, 2020년 ‘70세 취업확보조치 노력의무’를 규정하면서도 법정정년은 변함없이 60세로 유지하고 있다.

또 제도 시행의 단계마다 충분하고 점진적인 노사 합의를 거치고, 정부는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뒷받침해 노동시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2007년 사회적 합리성이 있는 경우 노조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변경을 가능하도록 법제화한 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미 일본은 고령자 고용이 ‘뉴노멀’로 정착했다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과 닿아있지 않은가.

고령자 계속 고용 로드맵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고령 인력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고, 그것만이 초고령사회 대응과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시장 체질 개선을 위한 노동개혁이 필요하다. 정말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지도로도 멀리 갈 수 없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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