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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이슈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다

대규모 양돈농장에 인공지능 기술 접목, 악취·비용 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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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창식 강원대 교수 연구진 개발
액비 위탁 어렵고 악취 민원 빈발
AI 자율운전 액비저장조 적용 후
한 달 만에 악취 50% 이상 사라져
한국일보

지난달 21일 강원 횡성군 강림면에 위치한 한 양돈농장 중앙제어실에서 관계자가 자율운전 액비순환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횡성=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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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군 강림면에 위치한 '팜스텍'은 돼지 7,300여 마리를 기르는 대규모 양돈농장이다. 이 농장에선 하루에 1톤(t) 트럭 40대가 실어 날라야 하는 규모의 분뇨가 매일 쏟아지지만, 전량을 자체 처리하지 못해 절반(20톤)을 외부업체에 위탁 처리해 왔다. 그런데 이마저도 업체가 폐업하는 바람에 반출이 어려워졌고, 밀집 사육 때문에 발생하는 악취로 인근 주민들의 민원도 빈발했다.

이 농장의 이중고를 해결한 것은 인공지능(AI) 기술이었다. 라창식 강원대 동물산업융합학과 교수 연구진이 액비저장조(동물의 분뇨를 액체비료로 만드는 곳) 안에서 미생물에 의한 생물학적 변화를 자동으로 계측하고 제어하는 자율운전 기술을 개발해 지난해 4월 이 농장에 적용하면서다. 한 달여 만에 악취 농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은 물론, 갈 곳을 찾지 못했던 분뇨 20톤도 처리가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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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수 강원대 동물산업융합학과 연구교수가 지난달 21일 강원 횡성군 강림면 양돈농장 팜스텍에 설치된 자율운전 액비저장조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횡성=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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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악취 문제가 해결된 배경에는 '액비순환 시스템'이 있다. 이 농장의 돈사 바닥은 구멍이 뚫려 돼지 분뇨가 모이는 슬러리 피트(Slurry Pit) 구조다. 슬러리 피트 내에 쌓인 분뇨는 액비저장조로 옮겨진다. 이렇게 모인 분뇨를 액비(액체비료)화한 다음, 돈사로 되돌려보내 악취 원인 물질을 희석시키는 것을 액비순환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축산환경조사'에 따르면, 자체 액비화 시설을 갖춘 농장 중 액비순환 시스템을 도입한 곳은 약 34%다.

다만 기존 액비순환 시스템은 여러 단계의 콘크리트 액비저장조가 있어야 해 넓은 부지와 많은 공사 비용이 필요하다. 소규모 농가로선 도입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전문가가 아닌 농장 관계자가 눈대중으로 액비의 숙성 정도를 판단하기 때문에 액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연구팀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의 액비저장조를 자율적으로 운전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기존 액비처리 과정은 하루 40톤의 분뇨가 발생할 경우 총 1,200㎥ 규모의 액비저장조가 필요하지만, 자율운전 기술을 통해 하나의 액비저장조에서 액비화하면 240㎥ 규모로 충분하다. 김승수 강원대 동물산업융합학과 연구교수는 "액비순환 시스템을 도입한 농장은 많지만 냄새, 거품, 색 등 비과학적인 지표에 근거해 액비를 순환시키다 보니 돈사 안 악취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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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분뇨를 모아 액체비료로 만드는 액비저장조 내부. 팜스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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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운전 기술을 적용하면 악취의 원인인 암모니아의 돈사 내 농도가 17~20ppm에서 2ppm 내외까지 하락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반적인 농장 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최남선(47) 팜스텍 농장장은 "제대로 처리된 액비가 다시 슬러리 피트로 돌아오면서 생산성도 크게 향상됐다"며 "돼지 활동성도 좋아지고 폐사율도 줄었다"고 말했다.

액비순환 자율제어 시스템은 CJ 피드앤드케어가 강원대에 연구비를 지원해 개발됐고, 2021년 연구농장에 시범 적용한 뒤 팜스텍에서 처음 상용화했다. 농식품부는 이 기술을 악취 문제를 겪고 있거나 부지가 좁은 소규모 농가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올해 시범 농장 2곳 이상을 선정하고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아울러 자율운전 기술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도 육성할 계획이다.

횡성=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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