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량리 경동시장 인근 보신탕 가게. '보신탕'이라는 간판 대신 '염소탕'을 내걸었다. 〈사진=이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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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량리 경동시장 인근 한 보신탕 가게. 60년 가까이 장사를 해왔다는 A씨는 최근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보신탕'이라는 글자 위에 '염소탕'이라는 글자를 덧댄 겁니다.
한때는 손님들이 줄을 서는 가게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신고와 단속이 이어지면서 염소탕을 같이 팔기 시작했습니다.
A씨는 “옛날에는 이 근처에 보신탕을 파는 가게들이 20곳이 넘었다”며 “지금은 5곳 정도만 남아있고 그마저도 다들 힘들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나라에서 법으로 장사 하지 말라고 하니까 접어야지 별수 있냐”며 “그래도 생계를 접는 거니 지원이라도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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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식용 금지법' 국회 통과…국민 94.5%는 “개고기 안 먹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 투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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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 일명 개 식용 금지법이 오늘(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재석 의원 210인 중 찬성 208인, 기권 2인으로 가결됐는데요.
법안은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하거나 도살하는 행위, 개나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한 식품을 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처벌은 3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습니다.
사실 개고기에 대한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개고기를 먹는 문제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지난 몇 달 사이 논의가 급물살을 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금지를 강조하고 나선 데다, 국민들의 인식도 이미 많이 바뀐 영향입니다.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의 '2023 개 식용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5%는 지난 1년 동안 개고기를 먹은 경험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은 이유로는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서'가 53.5%로 가장 많았습니다. '사육, 도살 과정이 잔인해서(18.4%)', '생산·유통 과정이 비위생적일 것 같아서(8.8%)', 주변이나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7.1%)'란 답변이 뒤를 이었습니다.
정서적 거부감에 대한 응답이 높게 나온 데 대해 어웨어는 “많은 국민들이 개를 음식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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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으라는 거냐”…생계 걱정 앞서는 상인들
━서울 종로구 신진시장 안 보신탕 골목. 〈사진=이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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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통과된 개 식용 금지법에는 관련 산업 종사자의 폐업 또는 전업에 대한 지원 근거도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상인들은 지원책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습니다. “뭘 보상해줄 수 있냐”는 겁니다. 그보다 당장의 생계 걱정이 앞선다고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신진시장 안 B보신탕 가게 주인은 “이곳에서만 40년 넘게 장사를 했는데 하루아침에 못하게 하는 건 굶어 죽으란 얘기 아니냐”며 “코로나19때 가게 운영이 힘들어 빚을 많이 졌는데도 자주 오는 어르신들이 있어 가게 문을 못 닫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상도 필요 없고 계속 가게를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C보신탕 가게 주인도 “장사를 한 지 30~40년 정도 됐는데, 금지법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다”면서 “사람들은 업종전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하지만, 이 나이에 이 일만 해온 사람이 무슨 다른 일을 하겠냐”고 토로했습니다.
가게 안에서 만난 한 손님은 “사실 개고기를 안 먹다가 금지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앞으로 못 먹을 것 같아 와봤다”며 “금지를 시키더라도 생업이 걸린 문제이니 연착륙시키는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애초 법안에는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폐업 등에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가 자칫 불법 개 식용 관련 업체들에게도 과도한 보상을 해야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법안 심사 과정에서 삭제됐습니다.
육견협회는 이 점을 지적하며 '정당한 보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협회는 “정당한 보상에 대한 대책이나 가이드라인도 준비해놓지 않은 일방적 밀어붙이기 종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헌법에 명시된 정당한 보상을 준비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개 식용 관련 사회적 논의기구에서도 최소 7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합의에 이르렀는데, 3년 안에 모든 것을 종식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육견협회는 개 한 마리당 200만원을 보상해달라고 정부 측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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