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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7년 묵힌 식초 1200만원에 속여 팔았는데… 사건 돌려보낸 대법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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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등록 아닌 영업 신고 대상”

집에서 직접 만든 식초의 효능을 부풀려 판매하더라도 영업등록 의무 없이 관할 관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식품위생법 위반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직접 만든 식초를 7년간 숙성·발효시켜 ‘파킨슨병에 효과가 있다’고 속인 뒤 1240만원에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A씨는 2020년 4월 파킨슨병 환자와 그 가족이 주로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노모가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데 우리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병이 호전됐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를 본 피해자 B씨가 “장모가 파킨슨병으로 인한 변비·복통이 심한데 해결할 수 있냐”고 묻자, A씨는 B씨를 집으로 불러 자신이 만든 식초를 홍보했다.

A씨는 “병원 의사들과 식초를 연구하고 있는데 저널에 투고했다”며 “효능이 뛰어난 시가 300만원 상당의 식초 원액 5병을 사 5주간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B씨에게 식초 7병을 1240만원에 팔았다. 하지만 해당 식초는 파킨슨병에 특효가 아닐뿐더러 의학 저널에도 실린 적 없는 평범한 일반 식초였다.

검찰은 사기와 함께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식품을 제조하거나 가공해 판매할 경우 영업등록 의무가 있는데 A씨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A씨는 식초를 유통업체에 판 것이 아니고 집에 방문한 소비자에게 팔았기 때문에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을 한 것이며, 따라서 영업등록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의 경우 관할 관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

1심과 2심은 A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식초를 만드는 데 7년 가까운 제조 기간이 소요됐으므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달리 봤다. 대법원은 “식품위생법령은 통·병조림 식품 등을 제외한 모든 식품을 즉석판매제조·가공업 대상 식품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식품의 제조 기간의 장단에 따라 이를 달리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즉석판매제조·가공업자가 통·병조림 식품 등을 제외한 식품을 스스로 제조·가공해 판매하는 경우 (식초 등 일부 식품을 대상 식품에서 제외한) 단서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며 “피고인의 식품 제조 기간이 7년에 이르더라도 즉석판매제조·가공업 대상 식품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기 등 다른 혐의 관련 원심판결 부분은 잘못이 없다”고 덧붙였다.

[문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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