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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기술유출범 잡는 경찰…승진은 하늘의 별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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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구속피의자 0명, 처벌이 우스운 기술도둑④

[편집자주] 산업에 미치는 피해는 막대하지만 처벌은 미약하다. 기술유출 사범 얘기다. 지난해 경찰이 검찰에 넘긴 기술유출 사건 중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례는 0건이었다. 기소돼도 대부분 집행유예 판결이 떨어지거나 실형인 경우에도 많아야 징역3년이었다. 기술유출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이상의 '솜방망이' 처벌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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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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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사범을 수사하는 '산기(산업기술)' 경찰은 외롭다. 승진으로 축하받을일 보다 옆 동료의 승진으로 축하해줄 일이 더 많다. 승진 평가에 필요한 정량적 기준인 검찰 송치건수, 구속 건수 등 실적을 마련하는 데 극히 불리한 게 산기 경찰이다. 빠르게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도 해외 기술유출 사건의 경우 최소 2년은 조사해야 검찰에 넘길 수 있고 매번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만 번번이 법원에서 막아세운다. 승진이 쉽지 않으니 후배 양성도 쉽지 않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내에서 승진이 어렵기로 손꼽히는 곳이 기술유출 사건을 전담하는 안보수사국이다.

책임감있는 수사경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은 승진이다. 계급정년 제도가 있는 경찰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승진하지 못하면 사실상 퇴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경찰이 수사에 성과를 내려고 뛰어든다.

그러나 기술유출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청 안보수사국, 시도청 안보수사대 경찰에게는 먼 얘기다. 사건을 종결하고 검찰에 넘겨야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관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데 기술유출 사건은 적어도 2년 이상 수사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찰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이 60일 내외인 걸 고려하면 12배 이상 긴 시간이 들어가는 셈이다.


기업은 신고 꺼리고, 법원은 구속 막고…'성과' 내기 어려운 기술유출 수사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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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정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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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사건은 피해 사실 발견(사건인지), 혐의 입증, 증거 수집 등 수사 전 단계에 걸쳐 일반 형사사건과 다르게 매우 복잡하다.

우선 기술유출 피해를 본 기업부터 피해 신고를 꺼린다. 기술유출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업계에서 '보안이 취약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고 이는 주가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정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에서 유출 피해가 발생하면 알게모르게 정부의 따가운 눈초리도 받아야 한다. 기업의 중요 정보인만큼 경찰은 피해 기업이 직접 신고하지 않으면 수사를 착수하기도 어렵다.

또 특정 기술이 담긴 파일, 문서 등을 유출하는 게 아니라 '인력'을 빼가는 것이기에 단순 이직으로 볼지 이직을 빙자한 기술유출로 볼지도 까다롭다. 혐의를 입증하는데 타 사건보다 경찰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해외에 본사를 둔 기업이 국내 기업의 기술을 유출한 경우엔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승진 심사에 '구속 여부'도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기술유출 사범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내세운 검찰과 경찰은 매번 구속영장을 신청·청구하지만 법원은 기각이 일반적이다.

수사 난이도도 높고 전문성도 필요한데 승진이 어렵다보니 지원자도 많지 않다. 신임 수사관들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잘 받고 승진 기회가 많은 시도청 금융범죄수사대, 반부패·공공범죄수사 등을 희망한다. 기술유출 수법이 첨단을 달리는만큼 수사당국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후배 경찰을 꾸준히 수혈해야 하는데 이들을 데려올만한 동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은 올해부터 기술유출 전문 수사계인 '방첩경제안보수사계'가 출범한만큼 수사의 전문성도 높이고 이들 수사관에 대한 처우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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