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무죄, 무죄, 무죄... 양승태 76세 생일날 활짝 웃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5년 만의 1심 선고]
양승태 "명쾌한 판결 재판부에 경의"
검찰 "판결 면밀 분석해 항소 결정"
한국일보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가운데)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법부 수장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들에게 그간 법원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던 논리가 의혹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이어진 결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 이종민)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이날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역시 혐의가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았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적용한 혐의는 크게 세 갈래다. △사법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박근혜 청와대와의 재판거래·입법부 상대 로비 △헌법재판소 견제를 위한 내부정보 불법 수집 및 여론 관리 △'양승태 코트'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및 사법부 비위 축소 시도다. 공소장에 적시된 범죄사실만 총 47개에 달한다.
한국일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요 혐의별 1심 판단. 그래픽=박구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모든 혐의에 대해 "죄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강제징용 사건' 등, 공소사실 절반을 차지한 '재판거래' 관련 의혹에 대해선 "피고인들 공모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기 어려울뿐더러,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관은 다른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 청와대를 통한 '우회 압박'을 가했다는 공소사실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견 직원을 통한 내부 사건 정보·재판관 동향 수집 혐의, 헌재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대필 기사 게재 의혹, 헌재에 유리하게 이용될 수 있는 취지의 위헌제청을 한 재판부에 대한 개입 논란 등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법원행정처가 추진한 주요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법관들을 감시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 역시 '무죄' 판단을 받았다. 이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와 법관 익명 커뮤니티 등 사법부 내부뿐 아니라,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 등에까지 외압을 넣었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었지만,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모두 물리쳤다.

이밖에도 이들이 사법부 위신 추락을 막기 위해 부산고법 '향응 판사' 사건과 '정운호 게이트' 관련 판사 비위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거나, 공보관실 운영비 3억5,000만 원을 고위 간부 대상 '격려금' 용도로 유용했다는 의혹 등도 재판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이날 약 4시간30분간 이어진 판결문 낭독 동안 눈을 감은 모습으로 일관하던 양 전 대법원장은 선고 직후 "당연한 귀결이고, 명쾌하게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별다른 입장 발표 없이 법원을 나섰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몸통을 겨냥한 4년 11개월간의 재판이 '전부 무죄'로 일단락되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 또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중 어느 쪽으로든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측은 선고 결과에 대해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짧은 입장만 내놨다. '세기의 재판'을 일단락한 '세기의 선고'가 나온 이날은 양 전 대법원장의 일흔 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