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매따오 클리닉에 진료를 위해 온 이들이 들어서고 있다. 매솟|김서영 순회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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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따오 클리닉’이 적힌 표지판 옆으로 오토바이, 택시, 지프차 등이 줄줄이 멈춰섰다. 보호자의 품에 안긴 아이들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이들이 내려 ‘1번’이 표기된 접수처로 향했다. 긴 의자는 곧 접수와 진료를 기다리는 이들로 북적였다.
지난 17~18일 태국 매솟에 있는 매따오 클리닉을 둘러보면서 내원객 대부분이 미얀마 출신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들이 입은 전통의상 론지와 얼굴에 연녹색으로 바른 따나카(자외선 차단을 위해 미얀마인들이 얼굴에 바르는 천연 화장품)는 태국 땅에서도 미얀마색을 드러냈다. 소개를 위해 동행한 매따오 클리닉 관계자는 “미얀마 카렌주가 가까운 만큼 카렌족 환자가 많지만 버마족이나 다른 민족도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클리닉 내부 안내판에는 주의사항이 영어, 버마어, 카렌어로 병기돼 있었다.
매따오 클리닉은 1989년 카렌족 난민 의사 신시아 마웅(65)이 동료들과 설립했다. 1988년 미얀마에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자 네 윈 정권은 계엄령을 내렸고, 신시아 마웅 원장은 인접한 태국 매솟으로 망명했다. 엄혹한 미얀마를 고칠 순 없으니 매솟에서 고통 겪는 이들을 치료하자는 것이 ‘난민에 의한, 난민을 위한’ 매따오 클리닉의 시작이었다. 클리닉의 설명에 따르면 그동안의 진료건수는 약 200만건으로 추정된다.
신시아 마웅 원장(앞줄 가운데)과 동료들은 1989년 태국 매솟에 매따오 클리닉을 세웠다. 매따오 클리닉 20주년 보고서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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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태국에 있으나 매따오 클리닉은 미얀마의 운명과 늘 함께였다. 지난 35년 동안 미얀마 내 인권 탄압이 심해지면 상처를 입고 국경을 넘어 매따오 클리닉으로 오는 이들이 늘었다. 2021년 쿠데타 이후에도 매따오 클리닉은 돈도 신분도 없어 치료를 받기 어려운 미얀마 난민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고 있다.
신시아 마웅 원장은 지난 17일 매따오 클리닉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의사와 병원은 공동체 속에 존재한다’는 신념을 강조했다. 주로 난민 환자가 오는 만큼 이들을 클리닉 바깥의 도움으로까지 이어주는 것이 클리닉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신시아 원장은 현 쿠데타 국면을 두고도 “권력은 통제가 아닌 나누는 것”이라고 군부를 비판했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 그가 병원에 올 일을 예방한다”는 그의 말에 따르자면, 미얀마 민주주의에 힘을 보태는 것까지가 매따오 클리닉의 소임인 셈이다. 다음은 그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신시아 마웅 원장이 지난 17일 태국 매솟의 매따오 클리닉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매솟|김서영 순회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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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의 정치적 상황이 클리닉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 2021년 쿠데타 이후에는 어떤가.
“2021년에서 2023년 사이 환자 수가 2~2.5배 증가했다. 단순히 수적으로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부상, 응급환자, 정신질환, 말라리아 환자 등이 늘어났다. 정신건강은 가족 및 공동체로부터의 이탈, 교육 기회 박탈, 실직 같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들이 많다. 이들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건 미얀마 내 의료 접근성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쿠데타 이후 태국으로 온 미얀마 난민은 약 5만명이라고 개인적으로 추산한다.”
- 이런 상황이 클리닉에 어떠한 부담이 되고 있나.
- 환자들에게 받는 치료비로는 불충분한가.
“우리에게 오는 환자의 약 80%는 의료보험이 없는 처지다. 보험이 있다면 치료비 일부를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그럴 수가 없다. 치료비를 전혀 낼 수 없는 이들도 있다. 멀리서 오는 환자는 가진 돈을 클리닉까지 오는 여비로 써버리거나, 장기간 치료받느라 보호자가 체재비를 써버리고 나면 돌아갈 여비가 없는 경우도 있다. 클리닉에선 환자들의 치료비 지불 의사와 여력을 알아보고 낼 수 있는 만큼만 ‘기여’하도록 한다. ”
초기 매따오 클리닉 건물. 1989년 한 카렌족 가족이 제공했다. 사진과 설명 모두 매따오 클리닉 20주년 보고서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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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닉을 돌아보는 동안 해외에서 온 의료 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초창기 나무로 얼기설기 지었던 건물은 약 35년이 흐르면서 캠퍼스와 같은 형태로 확대됐고, 국제적인 명성도 얻었다. 클리닉 관계자는 “의대생들이 인턴으로 오기도 하고, 휴가를 내거나 은퇴 후 봉사를 위해 오는 의료진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실 매따오 클리닉은 태국 당국의 정식 허가를 받은 의료 기관이 아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의료진들도 태국에서 의료 면허를 받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매솟에서 가장 큰 병원인 매솟 병원과 협력해 환자를 전원시키기도 하지만 ‘비공식’이란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 비공식 의료기관이면 어떤 한계를 지니나.
“매따오 클리닉은 공식적으로는 의료 장비를 운영할 수 있는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의료진 역시 태국의 면허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과 같은 의료 행위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이곳에선 기초적인 치료만이 가능하다. 우리가 다룰 수 없는 환자는 매솟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다행히 태국 정부가 관용을 베풀며 잘 협력해주고 있다. 그들 또한 취약한 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이 백신 공급이나 기술적인 부분 등에서 도움을 준다.”
한 부부가 지난 19일 오전 매따오 클리닉에서 딸의 출생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매따오 클리닉에서 출산 후 3일이 지나면 출생 등록을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클리닉 내부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나, 이날 클리닉 직원의 동행 하에 당사자 동의를 받아 촬영했다. 매솟|김서영 순회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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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태국 시민권을 신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매솟에 35년 동안 머물렀다. 처음엔 언젠가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좋아지지 않았고 난민들은 난민촌을, 매솟을 떠날 수 없었다. 나는 매솟에 머무를 수는 있지만 태국의 다른 지역으로 가거나 외국을 가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2022년 한국에 광주인권상을 수상하러 갈 때도 여권이 아닌 단기 여행 서류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가지를 준비해야 했다.”
신시아 원장은 ‘공동체’와 ‘파트너십’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난민을 위한 병원’인 매따오 클리닉은 공동체의 일부고, 클리닉 바깥과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의사로서 그의 직업관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그가 말하는 의사로서의 책임은 의료 행위를 넘어 고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로까지 뻗어나간다.
- ‘난민을 위한 병원’은 다른 병원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홀로 일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파트너로서 일한다. 일반적으로 난민 환자가 처한 문제는 복잡하기 때문에 난민을 의료보험에 가입시켜주는 시민단체 등 다른 NGO나 보건단체들과 좋은 협력 관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니 어떤 단체가 우리의 협력 기관으로서 난민들을 도울 수 있는지, 기존 단체가 사라지고 나면 도움을 받던 이들을 어떻게 다른 서비스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를 늘상 파악해야 한다. 난민들이란 정부 체계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 공동체와 파트너십을 자주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훌륭한 의사는 질병을 예방한다. 환자가 계속해서 병원을 찾아오지 않도록 하려면 그들의 의료 지식이 충분한지, 사회적 장애물에 처하진 않았는지, 억압이나 폭력을 겪어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지 등을 살펴야 한다. 단지 약을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차별이나 의료접근에 대한 장벽과 같은 사회적인 요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가 속한 공동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해 그들의 힘을 북돋아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자신의 건강을 돌보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보건도 증진할 수 있도록 아동과 청년을 격려하는 이유다. 진정으로 강해지려면 공동체와 강하게 연결돼 있어야 한다.”
태국 매솟의 매따오 클리닉에서 지난 18일 오전 한 환자가 혈압을 재고 있다. 매솟|김서영 순회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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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미얀마 난민을 위한 매따오 클리닉은 ‘봄 혁명’의 일부인가.
“그렇다. 지금은 매따오 클리닉이 탄생했던 1989년의 상황과 똑같다. 도중에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었지만 결국 군부는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권력을 강화해 국민들을 억압한다. 권력을 잡은 이들은 권력이 통제를 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권력은 통제가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더 많이 나눌수록 더 많은 힘을 갖는다. 나누지 않는다면 그들은 단지 통제력(권력)을 군부만을 위해 쓸 뿐이다. 군대를 권력의 무기로 쓰는 것이다. 국민들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좋은 정부 및 탁월한 보건 체계를 세울 권리가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와 인권 보호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 미얀마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이길 희망하나.
“민주주의는 안전, 존엄, 조화, 자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얀마가 전적으로 민주적인 나라가 되길 바란다. 그동안 미얀마는 통치 체계가 고도로 중앙집중화돼있었다. 그러나 미얀마는 다양한 민족 집단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듯 다양한 집단과 함께 일하려면 직업과 민족, 성별, 인종, 지위를 떠나 서로의 안전과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매일매일 이를 실천하며 배워야 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함께 해나가야 한다.”
☞ [미얀마 쿠데타 3년, 매솟을 가다①]빼앗긴 나라·신념·가족…지키기 위해 떠났다
https://www.khan.co.kr/world/asia-australia/article/202401301729001
매솟 | 김서영 순회특파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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