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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참사…10년 만에 인정된 ‘국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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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6일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 및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2.06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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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성지용)가 6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가 제기한 국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것은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판매 과정에서 국가가 유해성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명시적 법령을 위반한 게 아니더라도 헌법상 국가의 국민보건 보호의무와 국민의 건강·생명·신체에 주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가의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다. ‘안방의 세월호’라 불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확인된 지 13년 만에 국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 것이다.

항소심 소송을 이어간 이들은 2010~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두 가족이다. 이들은 ‘세퓨’라는 업체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자녀가 숨지거나 가족이 위중한 폐 질환을 얻게 됐다며 2014년 8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피해자들은 세퓨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GH의 유해성 심사 과정에서 환경부가 흡입독성 자료를 요구하지 않아 이 성분을 유해물질로 지정하지 않은 점, 보존제로 허가를 받은 뒤 다른 용도로 판매됐음에도 규제가 없었던 점 등을 국가의 책임으로 들었다.

2016년 11월 1심 재판부는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국가에 유해성을 확인해야 할 의무가 없고 유해성을 확인할 제도적 수단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의 결론은 달랐다.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큰 피해를 일으켰다면 명시적 법령 위반이 아니더라도 위법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재량권 행사가 현저히 합리성을 잃고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경우도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법령 위반’에 해당해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2심 소송에서 승소한 6일 피해자 법률대리인단인 (왼쪽부터) 남성욱, 송기호, 이정일 변호사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4.02.06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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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정부가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놓고 ‘유독물이 아니다’라고 공표한 점도 문제로 들었다. 국가가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안전한 것처럼 알렸고, 이것이 시민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불충분한 유해성 심사와 고시 등은 국민의 건강·생명·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고 직접적이었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지 않은 점 등은 위법행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발간한 조사보고서가 새롭게 증거로 제출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참위는 2022년 9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인을 규명한 조사보고서에 유해성 심사 등과 관련한 정부의 책임을 적시했다. 원고 측을 대리하는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특조위의 조사 자료, (새로 제출된) 환경부의 공문서 등이 판결이 바뀌는 데 주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고 측에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위자료 산정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2015년 11월 원인 미상의 폐렴으로 생후 1년이 채 안 된 딸을 잃은 김모씨 부부에게는 이날 위자료가 한 푼도 인정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위한특별법상 구제급여조정금을 이미 받았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나머지 원고들도 정부 지원금을 받은 점을 고려해 위자료를 각 300~500만원 선에서 정했다.

원고 대리인인 남성욱 변호사는 “특별법상 구제급여조정금은 사망한 피해자에 대한 것이었고 이번 소송의 위자료는 가족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라 성격이 달랐다”면서 “향후 비슷한 취지의 관련 판결에 줄 영향 등을 우려해 재판부가 소극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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