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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슈 동학개미들의 주식 열풍

[투자노트] “국민연금조차 에이피알 공모주를 1주도 배정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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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석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기금 적립금만 1000조원에 달하는 ‘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공단이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 첫 대어로 꼽히는 에이피알(APR) 공모주 청약에서 단 1주도 배정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투자업계에 돈다는 것. 국민연금은 1000조원 중 140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한다. 적어도 자금력이 약해 청약 경쟁에서 밀릴 기관은 아니라는 뜻이다.

조선비즈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가 2월 2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열린 한 간담회에서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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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메일을 통해서도 비슷한 내용의 제보가 들어왔다. 자신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출신의 외국계 금융기관 종사자라고 밝힌 제보자(익명)는 “국민연금은 페어플레이와 업계 균형을 위해 공모가 밴드 상단 이상으로는 신청하지 않았고, 그 결과 흥행 대박 기대감이 큰 에이피알 공모주를 한 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제보자는 “해당 주식이 대박을 치면 투자은행(IB)·기업·벤처캐피털(VC) 등은 엄청난 이익을 남기겠지만, 1주도 없는 국민연금은 추후 비싸게 매수할 수밖에 없다”, “가격 중심의 IPO로 페어플레이를 한 노후자금만 손해를 봤다”, “공모가 밴드가 무의미하다” 등의 지적도 남겼다.

에이피알은 화장품 브랜드 ‘에이프릴스킨’, 의류 브랜드 ‘널디’, 뷰티 브랜드 ‘메디큐브’, 즉석 포토부스 브랜드 ‘포토그레이’ 등 6개 브랜드를 보유한 뷰티테크 기업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액은 3718억원, 영업이익은 69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9%, 277.6% 증가한 수치다. 이 회사의 2014~2022년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CAGR)은 157.4%에 달한다.

성장세가 좋다 보니 IPO 시장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달 2~8일 진행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는 약 2000개 기관이 참여해 경쟁률 663대 1을 기록했다. 거의 모든 기관이 공모가 희망밴드(14만7000원~20만원) 상단 또는 상단 초과 가격을 제시하면서 최종 공모가는 25만원으로 확정됐다. 소문과 제보가 사실이라면 국민연금은 희망 공모가 이상을 적어내지 않아 청약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국민연금이 확인해주지 않아 현재로선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국민연금이 진짜로 공모가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해 적지 않았다면, 그건 에이피알 공모주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문가는 “국민연금도 꼭 쟁취해야 하는 매물이 나오면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며 “페어플레이와 업계 균형을 위해 일부러 정도를 걷진 않는다”고 했다.

사실 이 시점에서 국민연금이 에이피알 지분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최근 지나치게 과열 양상을 보이는 국내 IPO 시장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기에 제보자의 지적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올해 들어 신규 상장한 종목 6개사(재상장·스팩·이전상장 제외) 모두 공모가를 크게 웃돌고 있다. 원전 가동에 필요한 정비 사업을 하는 우진엔텍은 코스닥 상장 첫날이던 지난달 24일 300% 상승한 2만1200원으로 ‘따따블’(공모가의 4배)을 달성했고, 선박·보트 건조 업체인 현대힘스도 상장 첫날 따따블에 성공했다. 모두 훌륭한 기업이지만, 시장가치가 공모가의 4배에 달할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이번 에이피알 청약 경쟁률은 작년 IPO에서 흥행했던 두산로보틱스보다도 높았다. 이달 27일 코스피 상장 직후 시가총액은 1조8960억원이다. 만약 에이피알도 상장 당일 따따블을 이룬다면 시총은 순식간에 7조6000억원까지 치솟게 된다. 유가증권 시장 시총 상위 60위권에 진입한다는 의미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 시총이 7조4000억원 수준인데, 에이피알이 상장 첫날 따따블에 성공하면 시장가치가 곧장 아모레퍼시픽을 넘어선다”며 “해외 자본시장에서 상식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언젠가부터 IPO 새내기주의 따블 혹은 따따블이 너무 당연한 현상처럼 받아들여지는데, 정상적인 자본시장 환경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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