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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단독]‘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 발표 1년…한일 청구권협정 수혜기업들 “기부 계획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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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기업 중 포스코를 제외한 15곳이 23일 기준 우리 정부 산하 일제강점기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에 기부금을 낼 계획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정안전부 산하의 재단은 국내 법원에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상대로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해왔다.

앞서 지난해 3월 정부는 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이 재단의 재원을 국내의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확보하겠다는 ‘제3자변제’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정부의 발표 직후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재단에 40억 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1년여 지난 지금까지 다른 기업들은 기부금을 출연하지 않았고, 기부 계획도 없는 것으로 확인된 것.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 25일까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대법원에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소송 원고 기준 총 60여명이다. 이들이 받아야 할 배상금은 지연 이자를 포함해 95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재단에 남은 재원은 15억 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안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청구권자금 백서상 수혜기업들 “기부금 출연 계획 없어”

동아일보가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 15곳을 상대로 전수조사한 결과, 15곳 모두 현재 재단에 대한 기부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동아일보는 경제기획원이 1976년 발행한 청구권 자금 백서에 거론된 기업 15곳에 대해 기부금 출연 계획을 질의했다.

지난해 3월 정부의 발표 직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보였던 한국전력과 코레일, KT, KT&G, 하나은행, 한국농어촌공사 등은 모두 “추가로 검토되거나 결정된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전력 측은 “결정된 것이 없다”고 했고, KT&G 측은 “정부로부터 요청을 받은 것이 없고, 기부 사실이 없다”고 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지원받았던 자금을 이미 정부에 모두 상환했다는 입장을 밝힌 기업들도 있었다. IBK 기업은행은 “과거 청구권자금에서 지원받았던 돈은 이미 상환한 상태”라며 “기부금 출연은 정부와 강제동원피해자, 피해자 지원재단과 종합적인 논의를 거쳐 신중히 검토돼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대일청구권자금을 유상으로 지원받았고, 1986년까지 17년에 걸쳐 정부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했다”며 “원리금을 전액 상환했고, (청구권 자금은) 농업진흥을 위한 민간 기업(에 대한) 자금 융자로 활용됨에 따라 출연을 검토한 바 없고 출연 계획 또한 없다”고 했다. 이어 공사는 “정부로부터 출연 요청이 있을 경우 수혜기업 대상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도로공사도 “이미 1974년부터 1989년까지 원리금을 정부에 상환 완료했다”며 “현재 (기부금 관련) 검토 사항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과 수협중앙회, 농협중앙회, 한국남동발전 등은 자체 검토 결과 청구권협정의 수혜기업이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광해공업공단은 “공사는 57개 광산에 민간 보조금 등을 집행하는 역할을 했고, 실제로는 광산업체들이 수혜기업”이라고 했다. 수협중앙회도 “당시 정부의 위판장 건립 등 정책 사업을 위탁해서 진행했다”며 “청구권협정의 직접 수혜기업이 아니다”라고 했다. 농협중앙회도 “(청구권자금으로) 농기계 공급 대행 업무를 한 것으로 청구권 협정의 직접 수혜기업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이후로 공사가 여러 차례 인수 합병되거나 쪼개지면서 현재의 공사를 한일청구권협정 수혜기업으로 볼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답한 곳들도 있었다. 한국남동발전은 “발전사들이 한국전력에서 2001년에 분리됐기 때문에 1965년도의 한일청구권협정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배상금 95억원 넘지만…재단 가용 현금은 15억원

일부 기업들은 충분한 근거 없이 정부 산하 재단에 기부금을 출연할 경우 향후 기부를 결정한 기업 관계자들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배임(背任) 혐의 등을 받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한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의 관계자는 “자금을 출연하려면 이사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처럼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는 자금 출연과 관련한 논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당장 재원 마련이 시급하지만 정부는 거듭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한다”고만 할 뿐 직접적인 기부 요청은 자제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을 상대로 재단에 대한 출연을 직접 권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근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비선실세’ 의혹이 불거진 최순실 씨가 운영을 주도하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출연금을 강제모금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처벌받은 전례도 있다.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들의 기부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재단에는 15억 원 안팎의 가용 현금이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에 따르면 재단이 국내외 단체·개인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은 41억6345만 원이지만 이 중 25억여 원은 이미 다른 징용 피해자 11명에 대한 배상금으로 지급했다. 이에 재단에 남아있는 기부금은 15억여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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