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의 산부인과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김서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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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8시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30대 여성 A씨는 새벽부터 서둘러 병원에 왔다고 했다. 대형병원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집단 사직으로 진료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서였다. 2주 뒤 출산 예정이라는 A씨는 “제왕절개 분만도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오늘 검진 결과를 보고, 상황에 따라 분만 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공백이 나흘째 이어지며 대형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 예정이었던 산모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A씨처럼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까지 2차 병원 등 대안을 찾을지 고민에 빠졌다. 한 70대 남성은 전원을 고민하는 산모 딸에게 “아기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낯선 환경에 가도 불안하기만 하니 별수 없지 않겠냐”며 다독이기도 했다.
의사 대신 간호사가 내진을 하는 등 진료 상황이 바뀌며 초조함을 호소하는 산모도 많아졌다. 남편과 함께 세브란스를 찾은 산모 B씨는 “4월 출산 예정이지만 전공의 파업 영향이 그때까지 이어질까봐 불안하다”며“오늘 교수와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찾은 여의도 성모병원 산부인과의 간호사도 외래 진료를 앞당길 수 없냐는 산모들의 전화를 연이어 받았다. 간호사는 “현재 진료가 지연되고 있어서 병원 파업이 끝난 다음에 예약할 수 있는지 봐주겠다”고 안내했다.
23일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를 찾은 산모의 가방에 임산부 뱃지가 걸려있는 모습. 김서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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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병원 등 상급 종합병원을 찾는 환자 중 상당수는 노산이나 조산 등 고위험 산모에 해당한다. 응급 상황에 대비할 전문 의료진이 필요한 경우다. 대형병원 측은 “응급 환자의 진료·수술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비상시 촌각을 다툴 수 있는 산모들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온라인에는 “고위험 산모인데 혹시 모르니 분만할 서브(대체)병원을 추천해달라”, “빅5 병원 파업으로 불안해서 진료 기록지를 미리 받아두려 한다” 등 우려하는 글이 쏟아졌다.
수술 과정에 필요한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가 부족해 진통 주사를 맞지 못할 수 있다는 소식에, 자연분만 대신 미리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빅5 병원 일부는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전원이 근무하지 않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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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의료진 고충은 점점 커져…"죄인 된 기분"
현장에 남은 의료진 부담도 점점 가중되고 있다. 전공의가 할 일을 교수와 전임의(펠로),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이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간호사 등 일부 의료진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기도 한다. 대구의 한 대형병원 외과 간호사는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교수가 의사를 대신해 처방전을 내리라고 지시했다”며 “수술 드레싱(상처 소독) 등 자잘한 전공의 일까지 맡으며 파업 이후 업무 로딩(지연)이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는 전공의 파업 직전인 지난 16일, 심전도 검사를 전담하는 2주짜리 기간제 임상병리사를 신규 채용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심전도 검사는 보통 전공의가 맡는다. 해당 병원 간호사는 “병동에 직접 가서 포터블(portable·이동식) 심전도를 찍을 때 보통 인턴이 왔는데 요즘은 임상병리사 혼자 오더라”고 말했다.
빅5 병원 소속 외과 교수는 “비상근무체계로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야간 당직 등 전공의 업무를 막아내고 있지만, 내부에선 길어야 2~3주밖에 못 버틴다는 말이 나온다”며 “응급실 환자에게서 항의를 받았을 땐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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