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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다

‘5단계’ 인공지능, 챗GPT는 1단계…“3단계부터 대규모 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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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녹색 옷과 모자를 쓴 여성이 아름다운 일몰 시간에 뭄바이를 즐겁게 걷고 있다’는 지시문으로 생성된 동영상 장면. 오픈에이아이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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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에이아이가 2월15일 발표한 동영상 제작 인공지능 소라(SORA)가 한동안 뜨거운 화제였다. 소라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압도적인 동영상을 본 영상업계는 대부분 큰일 났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 정도라면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도 없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든 성급한 듯하다. 최근 1~2년 새 발표된 다른 동영상 인공지능에 비하면 도약인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언제쯤 어떤 변화가 얼마나 크게 올지 가늠하기에는 소라의 현 상태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 텍스트 프롬프트(지시문)를 받아서 1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내기까지 걸린 시간 계산이나, 사용한 컴퓨터 환경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었다. 불과 2주도 안 된 시점에서 동영상들을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역추적해 정보를 얻어 내는 일)을 한 결과를 공개 문서들과 함께 분석한 첫 논문은 소라가 좌우를 혼동한 장면 등 몇가지 문제점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막연한 불안과 기대를 진정시킬 정보는 없었다. 가짜 동영상 대책을 찾을 때까지 일반 공개는 하지 않겠다는 오픈에이아이의 명분은 타당하면서도, 사람들을 감감무소식으로 막연히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샘 올트먼이 추진 중인 7조달러 투자 유치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약한 인공지능’에서 꾸준히 강해져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크고 작은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세상에서 불안을 느끼는 원인 중에는 인공지능의 분류가 자꾸 바뀐다는 점도 있다. 막연히 인공지능이라고만 불렀던 것이 1980년 존 설의 논문을 계기로 ‘기계적으로 신호처리만 하는 약한 인공지능’과 ‘사람처럼 정보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강한 인공지능’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이 구분에는 영화나 소설을 통해 퍼지고, 개발자들이 알게 모르게 부추긴 막연한 인공지능 이미지에 일침을 놓고, 개발자들이 만드는 것은 약한 인공지능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개발자들은 이런 의도를 뒤집어 약한 인공지능도 어쨌든 인공지능이라고 받아들이고는 특정 기능만을 수행하는 갖가지 인공지능을 계속 만들었다. 그 결과 마빈 민스키는 2000년 인터뷰에서 ‘아무도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고, 진정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이룩한 성과도 별로 없는 채로, 개별 영역에서 작동하는 멍청한 인공지능만 만들었다’고 나름 반성할 정도였다. 결국 그는 ‘인공지능’과 ‘일반지능’에 대한 가장 깊은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5년 무렵부터 학계에서 ‘인간 수준 인공지능’(human-level AI), 일반인공지능(AGI), 초지능(superintelligence) 등의 단어가 새롭게 거론됐다. 모두 현실에 없는 ‘진짜 인공지능’을 뜻했다. 대중적으로는 레이 커즈와일, 닉 보스트롬 등을 위시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주변에서 실제 접할 수 있는 인공지능들은 점차 ‘특화인공지능’(Narrow AI)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직역하면 “좁은 인공지능”이지만, 우리말 어감으로는 이상해서 특화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챗지피티 등 LLM 아직 1단계
진화 주시하며 미래 준비해야



범용인공지능이라고도 하는 일반인공지능은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뛰어넘는 수준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자들은 일반인공지능에 이르는 단계 분류를 제안했다. 기존에 제안된 정의들이 일반인공지능의 추상적인 기본 속성을 규정했던 것에 반해, 일단은 외형적으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잠정 동의할 수 있을 척도에 따라 구분했다. 국제자동차엔지니어협회가 자율주행 5단계를 제정한 것을 본뜬 것으로, 궁극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혼란상을 극복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일각에서 일반인공지능으로 막연히 짐작하는 특화인공지능들도 같은 방식으로 분류했다.



한겨레

‘보라색 작업복을 입은 장난감 로봇이 축제 중인 요하네스버그를 즐겁게 걷고 있다’는 지시문으로 생성된 동영상 장면. 오픈에이아이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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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개입 여지 없는 5단계





딥마인드의 ‘수석 일반인공지능 과학책임자’인 셰인 레그가 이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그는 인간 수준 인공지능 논의에 참여해 인공지능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일반인공지능이란 단어를 써보자고 제안했고 초지능 문제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인공지능의 능력 기준으로는 인공지능이 아닌 0단계, 비숙련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인 1단계, 성인 숙련자 상위 50% 수준인 2단계, 10% 수준인 3단계, 1% 수준인 4단계, 모든 인간보다 뛰어난 5단계를 설정했다. 5단계에 이르러야 인간을 능가하는 일반인공지능(범용인공지능)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율성 기준으로는 인간이 전부 담당하는 0단계, 인간 통제 아래 인공지능이 지루한 작업을 맡는 1단계, 인간이 시키면 인공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 2단계, 인공지능과 사람이 동등하게 협력하는 3단계, 인공지능이 주도하고 필요하면 인간에게 추가 정보를 요구하는 4단계, 인간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5단계로 나눴다.



이 기준에 따라 특화인공지능인 시리나 빅스비, 단순 코딩에 동원되는 대규모언어모델들이 2단계, 달리 등 그림 인공지능이 3단계, 딥블루와 알파고가 4단계, 알파제로(독학으로 바둑·체스 등을 독파한 인공지능)와 스톡피시(체스 인공지능의 최강자)를 5단계로 분류했다. 인간의 질문에 답을 내놓는 챗지피티 등의 거대언어모델(LLM)은 아직 1단계 수준(비숙련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인 것으로 평가된다.



딥마인드는 자율성 3단계(인공지능·사람이 동등 협력)에 해당하는 특화인공지능 3단계(달리 등 그림 인공지능)나 아직 개발되지 않은 2단계 일반인공지능이 급격한 사회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하고, 자율성 4단계(인공지능이 주도하고 필요하면 인간에게 추가 정보 요구)인 특화인공지능 4단계(딥블루·알파고)급이 널리 퍼지거나 일반인공지능이 3단계에 도달하면 대규모 실업사태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양한 인공지능을 상상하는 일에 익숙한 과학소설 작가들은 각종 인공지능 담론이 어물쩍 넘어가는 지점을 잘 짚어낸다. 소설가 테드 창도 최근 미국 잡지 ‘뉴요커’에 기고하면서,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올트먼식 보편기본소득론의 이면에는 인공지능업계는 일로 매진할 터이니 파생되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고심하는 부담은 업계 바깥에서 맡으라는 태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5단계론도 천차만별일 인간 노동을 숙련도로 단순화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참·거짓 구별, 학습 능력의 폭과 자발성, 세계 이해 및 의식 보유 가능성 등등 오랫동안 논의된 원론적 문제는 분류 기준의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공지능 진화에 따른 인간의 미래를 막연히 뭉뚱그려 걱정하는 대신, 시야를 일단 정돈해서 문제를 쪼개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건 분명 진일보한 일이다. 더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서 제안된 분류체계를 고쳐나가면, 인공지능 발전에 깜짝 놀라 조급해지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인공지능의 창의성과 저작권 인정 문제는 자율성 4·5단계에 도달한 경우에나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관수│과학저술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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