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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선거와 투표

n잡 여성 노동자···“약자 보호·물가 안정 말하는 곳에 투표할 것”[총선 기획, 다른 목소리 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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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n잡러’ 김효진씨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총선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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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인 가구, 비수도권 청년, 퀴어, 웹소설 작가, 웹툰 각색가, 콜센터 상담사, 노동조합 임원…. 부산에 거주하는 김효진씨(36)를 설명하는 데는 많은 단어가 뒤따른다. 수식이 많은 만큼 그의 하루도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간다. 4개월 전 시작한 카드사 콜센터 업무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진다. 퇴근 후에는 웹툰 각색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새울 때가 많다. 웹소설 단행본 계약을 했지만, 콜센터 일을 시작하며 잠시 마감을 미뤘다.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2시간도 못 자는 경우가 생긴다.

김씨의 본업은 6년차 웹소설 작가다. 프리랜서 창작 노동자인 그의 삶엔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흔이 크게 남았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디콘지회) 부지회장직을 맡아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애쓰던 그는 코앞에 들이닥친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 ‘n잡러(2개 이상 직업을 가진 사람)’가 됐다. 정치 고관여층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는 선거판에 김씨와 같이 생계에 몰두한 유권자의 목소리는 쉬이 전해지지 않는다.

정치 중요성 실감하지만, 고민할 여력이 없어


노동시간이 늘자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줄었다. 그렇다고 정치에 마냥 무관심한 건 아니다. 김씨는 “정치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된 계기가 있다”고 했다. 게임업계에 불어닥친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이다. 2018년 11월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웹툰 작가 등 6명은 페미니즘 관련 글에 ‘좋아요’ 또는 공유를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2020년 7월 인권위는 이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뜻밖의 이유였다. 진정인 1명에 대해선 진정 시기가 사건 발생으로부터 1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나머지 5명에 대해선 인권위법에서 규정한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그는 “인권위가 조사를 제대로 안 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결정문을 보면 권고 사항도 많고 고심한 게 느껴졌다”며 “결국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각하됐는데 다르게 말하면 보호장치가 없다는 거라서 꽤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법치국가에서 법이 지켜주는 테두리가 없으면 약자 중의 약자로 내몰릴 수 있구나. 정책 투쟁의 중요성을 깨달은 계기였어요.”

김씨는 인권위 결정이 있던 그해 디콘지회 부지회장직을 맡았다. 노조가 출범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를 오가며 사상검증 이슈뿐만 아니라 불공정 계약 문제 등에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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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2022년 2월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플랫폼 일자리 성별격차, 해소방안 모색 간담회’에 김효진씨(맨왼쪽)가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부지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김효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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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되지 못한 유권자…물가안정·인권 정책 관심


“글쎄요. 유권자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김씨에게 ‘정치 효용감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세상에 없는 법’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활동가이지만 “내 삶을 대변해주는 정치인은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느 정당, 정치인이 내 삶을 대변하고 있는가를 고민해보면 여전히 물음표”라며 “그들의 행보를 보면 특히 그렇다. 그때그때 차악을 고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유권자 김효진’에겐 노동권만큼 우선하는 가치가 있다. “노동자로서 권리도 중요하죠. 근데 여성이자 퀴어라는 정체성이 좀 더 앞서는 것 같아요.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천부 인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요.” 김씨는 자신을 ‘버리는 패’라고 불렀다. “여성과 성소수자는 정치권에서 늘 버리는 패로만 쓰이는 것 같아요. 지난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도 그렇고요. 특히 성소수자는 앞으로도 정치권에 주목받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존재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피곤해지기도 해요.”

지지 정당은 없지만 정치에 관심이 높은 이른바 ‘인지적 무당층’인 김씨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해 투표할 예정이다. 하나는 생계다. 그는 “공과금, 생활 물가가 오르면서 생활이 급격히 어려워졌다”며 “직업을 추가로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선 관련 공약을 살펴 투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신념이다. 김씨는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후보 혹은 정당을 찍겠다”며 “특히 비례대표 정당은 어떤 인물을 1번으로 앞세웠는가를 중점적으로 볼 것”이라고 했다.

“유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이후에 줄곧 약자의 인권을 가시화하는 발언을 하면 그쪽을 응원하곤 했어요. 내 한 표라도 더해지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지금은 다들 그런 부분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할까요. 아직 시기가 그래서일지는 몰라도 약자를 위한 목소리가 좀 더 들렸으면 좋겠어요.”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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