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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돌봄은 외국인에, 최저임금 차등 적용' 보고서에…노동계 "반인권적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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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보고서 “외국인 돌봄노동자 늘리고 최저임금 차등 적용”

돌봄·이주노동자 관련 시민사회단체 “반인권적·인종차별적”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는 한국 사회는 자연스럽게 돌봄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돌봄서비스가 충분히 공급되고 돌봄비용을 낮추려면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이주노동자에게 돌봄서비스를 맡기는 장점 중 하나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인종차별적이고 돌봄노동자의 근무 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내용”이라며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 사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와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등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은행을 규탄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기본적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며 “가뜩이나 열악한 돌봄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빼앗는 반인권적 발상에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노동사회단체 활동가들이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한국은행의 이슈노트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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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지난 5일 발간한 이슈노트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은 “급증하는 수요를 국내 노동자만으로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과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이 업종만 최저임금을 낮게 차등 적용하는 방식 두 가지를 제시했다. 내국인만으로는 돌봄노동자 공급이 돌봄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보고 비용을 낮추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대안으로 낸 것이다.

한국은행 이슈노트는 홍콩 사례를 외국인 노동자 도입이 긍정적이라는 근거로 들었다. 홍콩은 1973년부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했는데 돌봄서비스직 인력난이 해소됐고 이후 홍콩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도 늘었다고 적혔다. 그러면서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개별 가구가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이들 국가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은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나 해당 국가 돌봄노동자의 업무 만족도는 높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홍콩아시아가사노동조합연맹(FADWU)은 성명서를 보내왔는데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노예와 로봇처럼 취급당한다”며 한국은행 이슈노트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연맹은 “홍콩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여느 노동자들과 같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차별적인 법과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홍콩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우리 상황에 만족한다는 말에 격분하고, 우리의 불리한 상황을 악용해 전 세계 다른 지역의 가사노동자 착취를 정당화하는 모든 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고용노동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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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한국이 이미 맺은 각종 국제협약과 국내법은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계돼 있다”며 “이주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것은 국제적 비난과 국가적 수치를 동반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저임금, 불안정 고용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돌봄일자리는 돌봄노동자의 삶을 갉아먹으며 유지되고 있다”며 “시민 불안을 볼모삼아 돌봄비용을 개별 가정으로 떠넘기려는 계략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지난해 발표한 이주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이나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사회서비스원(서울시 공공돌봄기관) 월급제 폐지 모두 돌봄노동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돌봄서비스에 들이는 사회적 비용을 아까워한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다고 노동계와 가사·돌봄 관련 단체들은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가 밝힌 국내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자는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220만명이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2027년 돌봄수요는 75만5454명으로 “이미 일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돌봄노동 가치를 하락시키는 방법으로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김혜경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한국 사회에서 돌봄은 이미 필수노동”이라며 “안정되고 지속 가능한 돌봄노동은 누군가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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