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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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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판 '내부자들'? 쫓겨난 법무장관 전남편의 녹취 폭로, '15년 집권' 총리 위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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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인사 수사한 검찰에 증거인멸 지시"
전 법무장관의 과거 녹취, 전남편이 공개
"그는 가정폭행범… 강요됐다" 진실공방
한국일보

유디트 바르가 헝가리 전 법무장관의 전남편인 페테르 머저르가 26일 부다페스트의 한 광장에 모인 지지자들을 상대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부다페스트=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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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사임한 헝가리 법무장관의 전남편이 반(反)정부 운동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내각의 부패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다. 녹음 속 발언 당사자는 내각 핵심 관계자였던 전 부인. 내부자의 폭로가 각종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15년째 장기 집권 중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에게 타격을 입힐지 주목된다.

26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텔렉스와 미국 AP통신 등에 따르면, 유디트 바르가 전 법무장관의 전남편인 페테르 머저르는 이날 헝가리 내각의 수사 개입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유디트 전 장관 "내각이 검찰에 증거인멸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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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바르가 헝가리 법무장관이 지난 2022년 2월 부다페스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부다페스트=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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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시점은 지난해 1월이다. 유디트 전 장관이 당시 남편이었던 페테르에게 빅토르 내각의 수사 개입 사실을 실토하는 발언이 담겨 있다. 2021년 집권당 피데스의 한 유력 인사가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는데, 내각 고위 관료들이 검찰에 증거 문건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녹음 파일에서 유디트 전 장관은 "그들은 무엇을 삭제해야 하는지 암시했지만 검찰이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페테르가 1년이나 지난 녹음 파일을 이날 폭로한 것은 최근 유디트 전 장관이 쫓겨나듯 사임한 것과 관련되어 보인다. 지난달 빅토르 내각은 과거 아동 성범죄에 연루됐던 공영 어린이집 부원장을 지난해 사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커털린 노바크 대통령과 함께 유디트 장관이 사퇴했고, 내각에서 승승장구했던 유디트 장관은 정계 은퇴까지 선언했다.

야권 "사법 정의 훼손" 유디트 "협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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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시민들이 26일 부다페스트의 의회 의사당 인근에서 반(反)정부 집회를 열고 있다. 부다페스트=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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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은 "페테르는 '빅토르 총리가 유디트 전 장관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비난하며 반정부 집회를 주도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5일 페테르가 부다페스트에서 연 집회에는 수천 명이 몰려들었고, 그는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폭로도 즉각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유디트가 내각 중심에서 벌어진 수사 개입 정황을 폭로한 것이기 때문이다. 야권 정치인 커털린 체흐는 “헝가리 사법 시스템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매우 분명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부다페스트 의회의사당 인근엔 수천 명의 시위대가 횃불을 들고나와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AP는 "빅토르 총리의 지배력을 뒤흔드는 스캔들"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페테르의 폭로에 '반부패 활동'이라는 순수한 의도만 있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날 폭로 후 유디트 전 장관이 즉각 '강요된 녹취'라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페테르가 비밀리에 대화를 녹음했고 최근 1년간 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했다"며 "16년여간의 결혼생활 동안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지난해 3월 이혼했다.

헝가리 정부는 즉각 진실공방으로 의혹을 비껴가려는 모양새다. 졸탄 코바치 헝가리 정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해당 녹취는 위협받은 아내의 발언"이라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야권이) 큰 소란을 피웠다"고 일축했다. 유디트 전 장관은 로이터통신 등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으며, 페이스북 계정도 폐쇄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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