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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자수첩] 경제부처 핵심으로 급부상한 국토부, 웃기 힘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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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기분입니다.”

최근 발표된 민생토론회를 준비한 한 국토부 과장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생토론회는 1월 4일부터 지난 26일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총 24차례 진행됐다. 처음엔 각 부처 업무보고 격으로 진행되다 주목을 받자 지방자치단체 현안까지 다루게 됐다.

국토부는 그중 19번의 민생토론회에 관여하며 올해 들어 가장 주목받는 경제부처로 떠올랐다. 국토부가 쥐고 있는 정책 수단들은 대부분 민생과 직결된다. 1월 10일 민생토론회에서 정부는 30년 된 아파트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지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지방의 ‘악성 미분양’ 주택을 사면 주택 수에서 제외한다는 정책도 내놨다. 이후 교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정부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B·C 연장 노선과 D·E·F 신설 노선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토부가 민생토론회 주도권을 잡으면서 다른 부처들도 국토부를 주목하는 눈치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어보면 ‘빛 좋은 개살구’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역에 맞는 개발 약속을 내놓기 위해 사업에 시동을 걸기도 전에 성급하게 발표했거나 이미 나온 것을 다시 우려먹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이다. 윤 대통령은 20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전남 영암에서 광주까지 47km 구간에 2조6000억원을 투입해 시속 140km 이상으로 달리는 초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올해 첫 연구용역을 시작하는 단계로, 국토부도 사업에 대한 자세한 로드맵조차 가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재원 마련 방안도 미지수다.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는 민생토론회에서 총 3회차에 걸쳐 언급됐다. CTX뿐만 아니라 철도 지하화 사업도 민생토론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골’ 아이템이다.

설익은 사업을 내놓고, 발표된 사업을 재탕했다는 점은 국토부 공무원들도 인정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당에서는 민생토론회가 ‘총선용’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은 우선순위를 가려 추진해야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개발에만 돈을 쏟으면 저출산은 무슨 돈으로 해결하고 복지는 어떻게 두텁게 할 건가. 사실 이면을 보면 기재부조차 민생토론회 관련 예산 규모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직원들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핵심부처로 떠오른 덕에 ‘일할 맛’이 난다고도 한다. 그러나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실현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용산의 높으신 분들이 아무리 무섭더라도 말이다. 총선 이후에 다시 시작될 민생토론회에서는 대통령의 ‘공수표 남발’이 더 이상 없길 바란다.

세종=김민정 기자(mj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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