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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슈 흔들리는 수입 곡물 시장

유제품 가공유 가격 낮춰… ‘밀크플레이션’ 근심 덜었다 [농어촌이 미래다-그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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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 1년

음용유 소비 줄어드는 트렌드 반영

‘유제품 원료’ 가공유 구분해 값 책정

2023년 가공유 ℓ당 87원만 인상돼

치즈·요구르트 값 등 물가안정 효과

낙농제도 개편에 따라 원유(原乳)값에 대한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정부는 ‘지속가능한 낙농’을 목표로 지난해 차등가격제를 도입했는데,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가격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일반 소비자가 마트 등에서 구입해 마시는 음용유는 생산비에 맞춰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결정하되, 유제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 가공유는 수입산과 경쟁할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적용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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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낙농가의 반발에 부딪혔지만 끈질긴 협상을 거쳐 이를 골자로 한 낙농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결국 관철시켰다.

차등가격제 효과는 도입 즉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고물가로 인한 소비자 부담이 큰 최근에는 유제품 가격의 상승을 억제하는 데 톡톡한 효과를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 시행된 차등가격제에 따라 음용유는 ℓ당 88원, 치즈 가공 등에 쓰이는 가공유는 ℓ당 87원 각각 인상됐다. 이는 작년 우유 생산비 증가율 13.7%(ℓ당 116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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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관계자는 “생산비 증가율보다 낮게 원유값 인상이 책정될 수 있었던 것은 차등가격제 도입의 효과로 볼 수 있다”며 “이전 제도에서 원유 가격이 결정됐다면 ℓ당 104∼127원에서 인상폭이 결정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차등가격제가 도입되기 전 원유 가격은 생산비 연동제로 결정됐다. 우유 공급이 부족하던 시절 생산량을 늘리고, 낙농업체와 원활하게 협상하고자 도입된 제도였다.

근래 들어 음용유 소비량은 줄고, 유제품 소비량은 꾸준히 늘면서 제도 개편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제로 2001년 36.5㎏이던 연간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22년 31.9㎏으로 감소했다. 반면 유제품 소비량은 같은 기간 63.9㎏에서 85.7㎏으로 늘었다. 마시는 우유를 찾는 소비자는 줄고, 치즈 등 가공된 유제품 수요는 늘었다는 얘기다.

유업체 입장에서도 제도 개편을 통해 비싼 음용유 구매량을 줄이고, 가공유를 싸게 살 수 있게 돼 전체적으로 부담이 완화됐다는 평가다. 유업체의 음용유 구매량은 2022년 194만6000t에서 지난해 190만t(잠정)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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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가격제 시행 초기여서 가공유를 생산하는 낙농가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제도가 정착하고 인센티브 조정 등이 확대되면 가공유 생산이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유 가격은 다소 복잡한 형태로 책정된다. 먼저 낙농가가 정해진 쿼터에 따라 생산한 원유는 낙농진흥회와 서울우유 등 22개 집유 주체를 통해 모여 유가공 업체에 공급된다. 원유 생산자들은 쿼터 범위 내에서는 정상 가격으로 납품할 수 있게 보장받는다.

원유 가격은 낙농진흥회에서 구입하는 가격에 따라 유가공 업체를 상대로도 대부분 동일하게 책정된다. 특히 올해는 원유의 구매량을 조정하는 협상이 예정돼 있는데, 감축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원유 가격 협상은 우유 소비가 감소하는 비율을 고려해 진행하기 때문에 유업체가 구매하는 음용유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덕분에 내년에는 유업체의 구매 부담이 더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음용유 수요는 전년 대비 2% 줄었다.

낙농가는 생산비가 올라도 원유 가격을 올려받기 쉽지 않을 상황인 셈이다. 저출산 심화에 따른 주요 우유 소비층의 감소, 저렴한 멸균우유의 지속적인 수입 증가가 이어지고 있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게다가 2026년부터는 우유 무관세율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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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요인 등을 감안하면 올해는 원유 가격 인상으로 인한 물가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국 차등가격제 적용으로 우유 가격이 과거에 비해 한층 안정된 모습을 보일 것이란 기대는 맞아떨어진 셈이다.

정부와 업계는 우유 생산비를 줄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낙농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논의를 진행 중이며, 조만간 중장기 발전대책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지인배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낙농·유가공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저렴한 유제품을 공급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생산자와 유업계가 정부를 중심으로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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