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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조용헌 살롱] [1441] 호거산(虎踞山)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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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처음 호거산 운문사에 왔을 때는 호랑이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까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야 산천이 몸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호거산(虎踞山)의 ‘거(踞)’ 자는 ‘웅크리다’라는 뜻이다. 경북 청도군에 있는 운문사는 호랑이 품 안에 있는 사찰이다. 전남 장흥에 사자산이 있고, 강원도 영월의 법흥사에 들어가다 보면 숫사자의 갈기가 보인다. 제대로 된 호랑이 모양은 호거산이지 않나 싶다. 사자보다는 호랑이가 좀 더 한국의 토속적 전통을 반영한다.

원광법사가 신라 화랑에게 준 ‘세속오계’도 운문사 자락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세속오계라고 하는 것도 인도 불교와 중국 불교와는 다른 신라 불교의 독자적 해석이자 적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찍부터 호거산은 신라 화랑들이 산의 정기를 받고 심신을 단련했던 수련장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산세가 강하다. 운문사 경내에서 북쪽으로 바라다보면 북대암(北臺庵)이 있다. 호랑이의 얼굴에서 턱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암자이다. 암자 뒤쪽으로 바위 절벽과 봉우리가 버티고 있다. 나는 절에 가면 바위 절벽 아래에 자리 잡은 기가 센 터에 관심이 간다.

조선일보

경북 청도군 호거산 운문사 북대암./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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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같이 동행한 청도 토박이 사업가 J씨가 북대암에 같이 가자고 한다. ‘저는 기운이 떨어지거나 골치 아픈 일이 있으면 북대암에 가서 몇 시간 앉아 있거나 바위 위에서 누워 있다 옵니다. 그러면 일이 잘 풀린다는 느낌을 받아요!’ 나는 사업가로부터 이 말을 듣고 ‘이 사업가도 뭐 아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정신세계에 대한 신앙심이 약간 느껴졌기 때문이다.

운문사는 사리암(邪離庵)이 기도터로 유명하다. 경북에서 팔공산 갓바위와 함께 양대 기도터가 사리암이다. 나반존자를 모셔놓은 도량인데, 신도들이 나반존자를 계속 염불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나만좋다’라고 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아주 영험한 사리암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보시금으로 운문사 승가대학 비용을 대고 사찰 운영비를 충당한다.

사업가 J는 IMF 때 부도나기 하루 전에 사리암에 가서 기도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 오전 암자에서 내려오는 산길에서 ‘땅을 사주겠다’는 전화를 받고 위기를 넘긴 경험담을 이야기해 줬다. 기(氣)가 떨어져서 보충할 때는 북대암, 기도발은 사리암이라는 이야기였다. 북대암 뒤쪽의 산신각에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 보니 독립불구(獨立不懼)의 기백이 생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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