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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목련이여, 한동훈을 잊어다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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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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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7년작 극장판 애니메이션 ‘초속 5㎝’는 제목의 의미가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앞부분에서 두 주인공 아카리와 다카키가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초속 5㎝라네.”(아카리) “뭐가?”(다카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아카리)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전 한 팬이 보낸 전자우편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다음 작품 제목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물론 실제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온라인 매체 ‘모노이스트’의 집필자인 공학박사 이토 다카히로는 수평을 유지한 채 떨어지면 초속 1.4m,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면 초속 2m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았다. 떨어지는 벚꽃의 속도를 실측한 이들도 초속 1.6m가량이라고 보고했다. 감독도 알고 있었단다. 아무렴 어떤가. 이 애니메이션은 ‘그들 사이를 갈라놓은 거리’에 대한 이야기요, 그들이 ‘내년에도 같이 벚꽃을 볼 수 있게’ 서로에게 다가가야 할 속도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올봄에도 벚꽃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올해는 벚꽃보다 목련 피기를 더 기다린 이가 적지 않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3일 김포시를 찾아 이렇게 말한 것이 발단이다.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4월10일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이겨 김포의 서울시 편입을 성사시킬 테니 표를 달라는 말이었다.



올해 목련은 일찌감치 피었다.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열리는 국내 유일의 목련 축제가 3월29일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 김포의 서울 편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포시 2개 선거구에서 서울 편입을 주장한 국민의힘 후보는 모두 낙선했다. 한 위원장은 총선 다음날 비대위원장직을 사임했다. 그의 ‘목련꽃 피는 봄’ 발언이 허언으로 판명 나는 데 68일이 걸렸다.



벚꽃도 순간에 지지만, 목련도 오래는 못 간다. 천리포수목원 축제는 4월21일까지 24일간 열린다. 그 꽃그늘 아래서 편지를 읽고 쓰고(박목월의 시 ‘4월의 노래’), 그대 떠난 봄 아픈 가슴 빈자리에 피는 꽃(가수 양희은의 노래 ‘하얀 목련’)이던 목련이 ‘한동훈 거짓말’의 상징까지 덧입기엔 너무 짧은 생이다. 그러니 목련이여, 이제 한동훈은 그만 잊어다오. 내년엔 김포 장릉에 그 찬란한 목련을 보러 가고 싶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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